무안 청계면 옛 국도변에 자리한 장부식육식당 전경. 6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손님들을 맞아온 지역의 대표 노포다. 사진=임구빈

[공동취재=최점주·임구빈·이병삼 기자]

무안군 청계면 문화로 78.’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화려한 간판도, 세련된 외관도 없는 소박한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전 11시가 가까워질수록 조용하던 마을에 차량이 하나둘 모여들고, 어느새 12개 남짓 한 테이블은 손님들로 가득 찬다.

6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노포, ‘장부식육식당’이다.

이곳에는 요즘 유행하는 ‘인생 맛집’을 알리는 화려한 문구도, SNS 감성을 겨냥한 인테리어도 없다. 대신 오랜 세월 한결같이 이어온 손맛과 사람 냄새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손님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7월 1일, 이 식당을 찾아 60년 세월을 견뎌온 한결같은 맛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도 1호선과 함께 시작된 60년 이야기

이곳의 역사는 1968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음식점 허가제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집 뒤편에서 직접 소와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에게 고기를 팔던 작은 식육점이 지금 식당의 출발이었다.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랑방이 됐고, 한 끼 식사를 나누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948년생인 곽여례 대표가 열아홉 살에 시집와 시댁 일을 거들기 시작하면서 이 식당은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게 됐다. 식육점과 음식점은 물론, 슈퍼와 담배가게까지 운영하며 오늘의 식육식당을 일궈냈다.

예전 이곳은 목포와 광주를 잇는 옛 국도 1호선 길목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군부대 장병,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의 발길이 하루 종일 이어지던 곳이다. 당시 90여 가구가 모여 살던 마을의 중심에서 이 노포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레시피는 없어요손끝이 기억하는 맛

요즘 유명 맛집들은 저마다 비법 소스와 계량화된 레시피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것이 없다.

“우리는 아예 레시피를 만들지 않아요.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내가 직접 간을 봐요. 양념은 많이 넣는다고 맛있는 게 아니에요.”

곽여례 대표의 말처럼 이 식당의 음식은 주문과 동시에 시작된다.

주방에서 막 손질한 신선한 돼지고기에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즉석에서 버무린다. 날씨와 고기의 상태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간은 60년 세월이 빚어낸 손끝의 감각으로 완성된다.

인위적인 단맛을 내기 위해 설탕을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만큼의 매콤함과 감칠맛으로 균형을 맞춘다. 그래서 한입 먹으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이 오래 남는다.

첫입부터 반하게 되는 삼겹살볶음

대표 메뉴는 삼겹살볶음, ​앞다리볶음, ​돼지육회다. 과거에는 소고기와 닭고기, 오리고기 요리도 함께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메뉴를 정비해 현재는 돼지고기 볶음 요리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메뉴는 단연 삼겹살볶음이다. 두툼하게 썬 삼겹살에 붉은 양념이 먹음직스럽게 배어 있다. 보기에는 제법 매워 보이지만 막상 맛보면 맵기보다 감칠맛이 먼저 느껴진다. 씹을수록 고기의 육즙과 양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밥 한 공기를 금세 비우게 만든다.

당일 도축한 신선한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것도 맛의 비결이다. 흔한 제육볶음과는 결이 다르다. 고기의 식감이 살아 있고 양념은 고기 본연의 풍미를 더욱 살려준다.

이 집만의 또 다른 별미는 돼지육회다. 돼지고기를 생으로 먹는다는 것이 낯설 수 있지만, 신선한 등심만 사용해 잡내가 없고 부드러운 식감이 인상적이다. 한입 맛본 손님들은 “소고기 육회보다 더 부드럽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낸다.

남도 밥상의 품격은 반찬에서 완성된다

이 노포의 진짜 매력은 고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 위에 차려지는 밑반찬 하나하나에도 오랜 세월이 담겨 있다.

잘 익은 묵은지와 젓갈, 콩나물은 사계절 변함없이 상을 지키는 기본 반찬이다. 여기에 무안 특산물인 양파와 마늘로 직접 담근 장아찌가 더해져 소박하지만 정갈한 밥상을 완성한다.

기름진 삼겹살 한 점을 상추에 올리고 묵은지와 장아찌를 함께 싸 먹으면 남도 밥상의 진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반찬은 화려하지 않지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다. 그래서 손님들은 “반찬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은 뚝딱”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를 이어가는 신선함이라는 원칙

이 집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마지막 주문은 오후 4시다. 준비한 고기가 떨어지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가장 신선한 상태의 고기를 손님상에 올리겠다는 원칙 때문이다.

30여 년 전 공무원 생활을 접고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아들 김석종 씨는 지금 식당의 2대 주인이다. 그는 매일 신선한 돼지고기를 직접 공급하고, 며느리는 곽 대표에게 배운 손맛을 이어받아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식당 옆에는 손녀가 운영하는 카페도 자리하고 있다. 한 공간에서 3대가 함께 손님을 맞이하는 풍경 또한 이곳만의 정겨운 매력이다.

손님들이 오래 사시라고 해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운다.

“1년에 몇 번은 꼭 옵니다.”

“SNS를 보고 왔는데 기대 이상이네요.”

처음 찾은 손님도, 수십 년 단골도 이곳에서는 모두 같은 손님이다. 맛은 가장 빠르게 입소문을 탄다고 했던가. 광고 한 번 하지 않았지만 하루 평균 150명이 넘는 손님이 이곳을 찾는다.

오랜 세월 식당을 지켜온 비결을 묻자 곽여례 대표는 잠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 손님들이 20년 만에 와서 ‘엄마 살아 계시는지 보러 왔다’고 해요.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이 맛을 계속 먹는다’고 말씀해 주실 때가 제일 고맙죠.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고 웃으며 나가시는 모습, 그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맛은 시간이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곳은 그 말을 가장 잘 증명하는 공간이다.

변함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며 같은 방식으로 정성을 담아내는 한 접시. 그 한 접시에는 60년 세월과 가족의 손맛, 그리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안 청계를 찾는다면 이 식당을 한 번쯤 들러볼 이유는 충분하다. 오래된 식당 하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지켜온 남도의 맛과 정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삼겹살볶음과 돼지육회는 정갈한 남도 밑반찬과 어우러져 한층 깊은 맛을 완성한다. 사진=임구빈
메뉴는 단출하다. 삼겹살볶음과 앞다리볶음, 돼지육회만으로 60년 노포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임구빈
곽여례 대표와 아들 김석종 씨가 취재진과 식당의 역사와 손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임구빈

1개의 댓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