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취재=박천행·최점주·유종 기자] 무안군 일로읍 복룡리 김연례(85) 할머니. 사람들은 그를 정겹게 ‘학천댁’이라 부른다.
김 할머니는 55년 세월 동안 일로오일장을 시작으로 무안, 함평, 송정리 오일장을 돌며 생선장사를 해온 장터의 산증인이다.
할머니에게 일로장은 삶의 터전이자 애증의 공간이다.
30대에 남편과 사별한 뒤 어린 남매를 홀로 키워야 했던 그에게 일로장은 생계를 위해 매달려야 했던 절박한 삶의 현장이었다.
새벽 별빛 아래 생선을 이고 지고 장에 나와, 해가 지고 달이 떠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날들이 수십 년 이어졌다.
비가 쏟아져 장판이 흙탕물로 변하던 날도 있었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손끝이 얼어붙던 날도 많았다.
장사가 되지 않아 팔지 못한 생선을 안고 허탈하게 돌아서야 했던 날 역시 숱했다.
김 할머니는 당시를 떠올리며 담담히 말했다.
“그때는 참 많이도 울었제. 장사 안되는 날은 애들 밥걱정이 먼저였응게.”
일로장은 할머니에게 야속한 곳이었다. 먹고살게 해줬지만, 동시에 끝없는 고단함을 안겨준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은 남매를 키워내고, 삶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터전이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제. 이 장 아니었으면 우리 식구 못 살았을 것이여.”
세월이 흐르며 지금의 일로장은 예전만 못하다. 한때 장날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던 시장 골목은 대형마트와 시대의 변화 속에 한산해졌고, 오랜 단골들도 하나둘 세월 따라 자취를 감췄다.
그럼에도 김 할머니는 지금도 장날이면 변함없이 자리를 지킨다. 장터에서 만난 할머니의 손은 굽고 거칠었다. 55년 세월의 무게가 손마디마다 깊게 패여 있었다.
기자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건넨 한마디는 정겨웠다.
“우리 조카 왔는가.”
이내 고등어를 집어 들며 “여기 고등어 싸줄텐게 가져가소”라는 다정한 말끝에는 오래된 장터 인심이 묻어났다.
일로장은 김 할머니에게 고단한 삶의 상처이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삶의 동반자다. 미워도 떠날 수 없고, 고달파도 지켜야 했던 장터.
오늘도 학천댁은 묵묵히 일로장 한 편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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