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바위, 현재 밑 부분만 남아 있다. 사진=문윤진

[공동취재=문윤진·유종 기자] 무안군 청계면 월선1리. 승달산 자락의 산과 들이 어우러진 이 마을에는 오늘날 지도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옛 지명과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토끼바위’​다.

월선동(月仙洞)은 현재 월선1리·2리·3리 마을 중 가장 먼저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월동·수정동·학천동·월선동 등 4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옛 기록과 마을 자료에는 토끼산·비친암골·월구정·소잔등·토끼바위·은락골 등 다양한 지명이 전해진다.

이 가운데 수정동에는 토끼바위’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산비탈에 자리한 수정동은 옛날 이십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척박한 산중 분지에 뿌리를 내린 마을이지만 집집마다 곡식을 풍성하게 거두며 살림살이가 풍족했다고 한다.

어느 날 재 너머 법천사 스님이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을 찾아와 시주를 청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스님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는 “요새 중놈들은 염치도 없어. 중이라는 핑계로 젊은 놈들이 게을러서 그 넓은 사전(寺田), 사답(寺畓)은 황무지가 되도록 묵혀 놓고 농민들이 피땀 흘려 농사지어 놓은 곡식만 구걸한다”며 시주 그릇을 빼앗아 측간의 인분을 가득 담아 스님에게 주며 내보냈다고 한다.

수모를 당한 스님은 마을을 떠나 산등성이에 올랐다. 그곳에서 수정동을 바라보는 토끼 모양의 바위를 발견했다. 스님은 이 마을이 잘 사는 것은 마을을 향해 있는 토끼바위가 품은 정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토끼바위의 두 귀 중 한쪽을 부숴버린 뒤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 버렸다는 것이 전설의 내용이다. 그 후부터 마을은 세가 차차 기울기 시작하여 지금은 서너 가구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이장 최지운(54) 씨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모욕당한 스님이 “앞으로 수정동은 망하고 학천동이 흥할 것”이라며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토끼바위는 수정동을 바라보는 동시에 산등성이 너머 학천동(鶴川洞)을 향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수정동에는 몇 가구만 남아 있는 반면에 학천동에는 행복마을 사업을 통해 한옥이 들어서는 등 여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전설 속 예언이 이루어진 것 같아 흥미롭다.

현재 수정동(사진 위)과 학천동(사진 아래) 마을. 사진=문윤진

월선마을은 산과 저수지, 하천이 어우러진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춘 마을로 소개되고 있다. 월선동의 또 다른 이름인 ‘수월동(水月洞)’과 ‘수정동(水晶洞)’에 대해서는 도선국사가 이곳에 ‘운중수월(雲中秀月)’이라는 명당이 있다고 하여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처럼 월선마을에는 지형과 자연환경, 풍수, 사람들의 생활이 어우러진 여러 지명이 존재했다. ‘토끼바위’ 역시 그러한 옛 지명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논밭과 산길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익혔던 지명들이지만, 도로가 만들어지고 생활공간이 변화하면서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이름이 됐다.

특히 ‘토끼바위’는 세월의 흔적 속에 토끼 형상을 이루던 윗부분은 사라지고 현재는 아랫부분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에 전해지는 전설은 단순한 옛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지명의 유래와 옛 조상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산길 한편의 작은 바위 하나에도 마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토끼바위 역시 단순한 돌이 아니다. 그곳에 얽힌 전설과 지명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서사(敍事) 속에서 현재 우리들의 삶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옛 지명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이 곧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인 이유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