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취재=최점주·임구빈·이병삼 기자] 무안의 여름은 갯벌에서 시작해 식탁에서 완성된다.
현경면 용정리로 들어서면 낮은 구릉과 황토 들판 너머로 갯벌과 함해만이 펼쳐진다. 바다를 품은 마을답게 이곳의 밥상에는 계절마다 제철 생선이 오른다. 그중 여름이면 유독 식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생선이 있다. 무안 사람들이 ‘운저리’라 부르는 ‘문절망둑’이다.
지난 7일 오전, 현경면 용정리에 자리한 봉대횟집을 찾았다. 화려한 외관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단골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박승원(1950년생)·나정덕(1957년생) 부부는 이날도 통통하게 살이 오른 운저리를 손질해 회와 회무침을 차려냈다. 부부가 이곳에서 음식 장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43년째이다.
1983년 작은 식당에서 시작된 43년
“83년도에 시작했으니까, 벌써 43년 됐네요.”
식당의 역사를 묻자 나정덕 사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식당은 1983년 용정마을 입구의 작은 가게에서 출발했다. 포장마차처럼 음식을 팔며 손님을 맞았고, 정성껏 차린 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조금씩 손님이 늘었다. 부부는 그렇게 번 돈을 모아 지금의 식당을 마련했다. 현재 자리에서 영업한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나 사장에게 처음부터 바다가 익숙했던 것은 아니다. 고향 영산포에서 결혼해 용정리에 정착했을 당시만 해도 “바다의 ‘바’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운저리라는 생선 이름조차 낯설었다. 처음 손질법을 가르쳐준 이는 마을 어르신이었다. 새로 산 칼을 손에 쥐여주고 생선 배를 가르는 법부터 내장 손질까지 하나씩 알려줬다.
“처음엔 운저리가 뭔 생선인지도 모르고, 무서워서 잡지도 못했어요. 옆에서 어르신이 손질하는 법부터 하나씩 가르쳐주셨죠.”
낯선 생선을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시작된 인연은 어느덧 43년의 세월로 이어졌다.
길손이 쉬어가던 ‘봉오재’, 식당 이름이 되다
‘봉대횟집’이라는 이름에는 마을의 옛이야기도 담겨 있다.
나 사장은 “마을 뒷산인 봉대산과 예부터 ‘봉오재’라고 불리던 동네 이름을 따서 봉대횟집이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봉오재’는 과거 해제와 지도를 오가던 길손들이 고개를 넘다 잠시 쉬어가던 길목이었다고 한다.
용정리는 운저리회무침과 보리밥으로도 이름난 마을이다.
1980년대 초반, 봉대마을에서 막걸리와 잔술을 팔던 ‘원조양정회무침식당’에서 여름부터 가을까지 많이 잡히던 운저리를 안주로 내놓으면서 운저리회무침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구이나 찌개 등으로 먹던 생선을 회로 내놓자 손님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여기에 보리밥을 곁들여 비벼 먹는 방식까지 입소문을 타면서 한때 용정리 일대에는 운저리 전문점이 5곳이나 들어서기도 했다.
봉대횟집도 이 무렵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
계절이 바뀌면 밥상도 달라진다
바닷가 식당의 메뉴에는 계절이 그대로 담긴다.
나 사장은 “계절마다 나오는 고기가 다르니 상에 올라가는 음식도 자연스럽게 바뀐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민어와 병어, 쭈꾸미 등 제철 생선을 내고 가을에는 전어를 준비한다. 겨울부터 봄까지는 찰진 숭어가 밥상을 채운다.
여름부터 가을 초입까지는 운저리가 주인공이다.
운저리는 7월부터 10월 초까지 제철로 꼽힌다. 봄철 산란기를 지나 장마 무렵부터 다시 잡히기 시작해 살이 오르는 여름과 가을에 맛이 깊어진다.
갯벌과 바다의 계절 변화가 한 접시의 음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흔한 생선에서 귀한 별미가 되기까지
지금은 운저리를 찾아 먹지만, 예전에는 흔해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생선이다.
한창 많이 잡히던 때에는 “잡으면 버릴 정도”였고, 1㎏에 2천 원 정도에 거래되거나 뭉텅이로 팔리기도 했다.
이 식당에서도 예전에는 무안 앞바다 덤장에서 바로 잡아 올린 운저리를 사용했다. 살아 있는 생선을 가져오면 그 자리에서 손질해 손님상에 올렸다.
하지만 바다의 환경이 달라지면서 운저리도 예전만큼 흔하지 않게 됐다. 기후 변화와 수온 상승 등의 영향으로 무안 앞바다에서 잡히는 양이 줄면서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 살아 있는 운저리를 들여와 사용하고 있다.
한때 흔하디흔했던 생선이 이제는 제철을 기다려야 하는 별미가 된 것이다.
맛을 결정하는 40년 세월 이어온 ‘막걸리식초’
주문을 받자 나 사장은 수조에서 운저리를 건져 올렸다. 생선의 뼈와 내장을 손질하는 손길은 망설임이 없었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솜씨다.
운저리회는 깻잎에 올려 참기름과 참깨를 곁들인 된장, 마늘, 청양고추와 함께 싸 먹는다.
회무침은 다르다. 운저리와 채 썬 무, 양파, 깻잎을 매콤새콤한 양념에 버무린다.
그리고 이 맛의 중심에는 특별한 재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막걸리식초’다.
“회무침은 결국 초 맛이에요.”
식당 한편에는 오래된 항아리 세 개가 놓여 있다. 40년 세월 이어온 막걸리식초가 담긴 항아리다.
나 사장은 어린 시절 친정에서 식초를 담그던 방법을 그대로 이어왔다. 감식초 등 여러 종류의 식초를 사용해봤지만, 회무침에는 막걸리식초가 가장 잘 어울렸다고 한다.
톡 쏘는 강한 신맛보다는 막걸리 식초 특유의 부드럽고 깊은 신맛이 운저리의 담백함과 채소의 아삭한 맛을 살려준다.
“다른 건 몰라도 식초 맛 하나만큼은 내가 장담해요.”
오랜 시간 음식에 매달려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보리밥에 비벼야 완성되는 운저리회무침
운저리회무침은 보리밥을 만났을 때 또 다른 음식이 된다.
예부터 갯마을 사람들은 새콤하게 무친 운저리회무침을 보리밥에 넣고 쓱쓱 비벼 먹었다. 이 횟집에서도 손님의 취향에 따라 보리밥과 쌀밥을 내놓는다.
넓은 대접에 보리밥을 담고 회무침을 듬뿍 올린다. 여기에 참기름을 살짝 둘러 비비면 쫀득한 운저리 살과 아삭한 채소, 새콤매콤한 양념이 한데 어우러진다.
특별한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그 소박함 속에 갯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어온 식습관과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운저리회무침 해 가지고 평생 먹고살았지요”
나 사장에게 운저리는 음식 이상의 의미다.
“운저리회무침 해 가지고 평생 먹고살았지요.”
짧은 한마디에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담겼다.
부부는 운저리를 손질하고 회무침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키웠다. 좋은 날도 있었고 힘든 날도 있었지만, 식당을 지켜온 시간만큼 운저리도 부부의 삶 깊숙이 자리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바다도 변했다. 예전 고기를 잡던 덤장은 사라졌고, 바다의 수온도 달라졌다. 재료를 구하는 방법도 예전과 같지 않다.
그래도 나 사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손님을 맞고 싶다고 했다.
“언제까지 할지는 몰라도, 하는 동안에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야지요.”
43년 동안 식당을 지켜온 힘은 특별한 비법보다 손님을 대하는 마음과 음식에 대한 정성이었다.
여름이면 다시 생각나는 고향의 맛
갓 무쳐낸 운저리회무침을 맛봤다.
막걸리식초의 깊고 감칠맛 나는 신맛이 먼저 입안을 감싼다. 이어 매콤한 양념과 운저리의 쫀득한 식감이 어우러진다. 아삭한 채소 사이로 씹히는 운저리 살에서는 바다의 싱그러움도 느껴진다.
보리밥에 회무침을 올려 쓱쓱 비벼 먹으니 맛의 결이 또 달라진다. 새콤매콤한 양념과 쫀득한 생선 살, 아삭한 채소가 어우러져 소박한 보리밥 한 그릇이 든든한 별미로 변한다.
한때는 흔해서 귀한 줄 몰랐던 생선. 그러나 이제는 제철을 기다리고 일부러 찾아야 하는 맛이 됐다.
이 식당의 운저리회무침에는 그 변화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갯벌에서 잡히던 생선, 마을 어르신에게 배운 손질법, 40년 넘게 이어온 식초 항아리, 그리고 한평생 식당을 지켜온 부부의 손길까지. 한 접시의 운저리회무침이 단순한 음식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이름조차 몰랐던 생선을 서툰 손길로 다듬기 시작한 지 43년. 그 세월은 이제 음식에 깊고 은근한 맛으로 배어 있다.
이 식당의 운저리회무침은 그렇게 한 부부의 삶과 무안 갯벌의 기억을 품고, 올여름에도 손님들의 식탁에 오른다.
무안의 여름은 갯벌에서 시작해, 한 그릇의 운저리회무침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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