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취재=최점주·임구빈·이병삼] 새벽 바다를 헤치며 작은 배 한 척이 신안과 무안의 드넓은 청정 갯벌을 향해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물이 빠진 갯벌에 배가 닿자 한 남성이 능숙한 몸놀림으로 내려선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평범한 삽이 아니다. 단단한 갯벌을 효율적으로 파기 위해 철공소에서 직접 제작한 특제 ‘쇠가래삽’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검은 흙으로 보이는 갯벌이지만, 문홍배 대표(1952년생)에게는 평생 가족을 지켜온 삶의 터전이자 생업의 현장이다. 45년 동안 갯벌을 누빈 그는 이제 뻘의 결만 보아도 낙지가 숨어 있는 곳을 짐작한다.
“45년을 파다 보니 이제는 낙지 구멍이 눈에 그냥 보입니다. 갯벌을 보면 낙지가 어디에 숨어 숨 쉬는지 알 수 있어요.”
배에서 내려 몇 걸음 옮긴 그는 특제 가래 삽으로 갯벌을 두세 번 파낸다. 잠시 뒤 연한 빛깔의 뻘낙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초보자는 구멍 하나를 30분 넘게 파도 허탕을 치기 쉽지만, 장인의 손길에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다.
지난 7월 24일, 낙지 금어기(6월 20일~7월 20일)가 끝난 뒤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 무안군 삼향읍 ‘신안무안뻘낙지’를 찾아 갯벌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뻘낙지의 맛과 철학을 들어봤다.
45년 외길… 가래 낙지만 고집한 이유
낙지를 잡는 방법은 다양하다. 주낙과 통발, 횃불 낙지 등 여러 방식이 있지만 문 대표는 평생 ‘가래 낙지’를 고집해 왔다. 간혹 횃불 낙지를 잡기도 하지만 그의 주된 방식은 언제나 가래 낙지였다.
“농사짓기 싫다던 아내와 무작정 목포로 나왔지요. 안좌, 암태, 비금, 도초 등 신안과 무안 갯벌을 다니며 낙지를 잡았습니다. 뱃삯으로 낼 낙지 세 마리도 못 잡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래도 가래 낙지만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가래 낙지는 가장 힘든 어업으로 꼽힌다.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 갯벌을 파야 하고, 물때도 정확히 맞춰야 한다. 한때 300명이 넘던 가래 낙지 어업인은 이제 50여 명만 남았다.
그럼에도 문 대표가 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가래로 잡은 낙지는 스트레스를 덜 받아 오래 살고, 육질도 훨씬 부드럽습니다.”
문 대표는 낙지 맛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갯벌이라고 말한다.
“무안과 신안 갯벌은 입자가 곱고 미네랄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낙지가 부드럽고 씹을수록 단맛이 살아납니다.”
갯벌에서 직접 잡은 활낙지는 곧바로 식당 수족관으로 옮겨진다.
좋은 낙지 요리는 많이 손대지 않는다
식당 주방은 30년 가까이 낙지 요리를 책임져 온 아내 노연님 여사(1957년생)의 몫이다.
노 여사의 요리 철학은 단순하다.
“좋은 낙지는 많이 손대지 않는 것이 가장 맛있습니다.”
연포탕과 초무침은 끓는 물에 살짝만 데쳐 낙지 본연의 육질을 살리고, 초무침 양념에는 인공 조미료 대신 사과식초와 직접 담근 매실청을 사용한다. 산낙지를 손질할 때도 어르신들이 드시기 편하도록 잘게 썰고, 간도 담백하게 맞춘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는 한우낙지탕탕이, 산낙지, 낙지볶음, 연포탕 등 다양한 낙지 요리다. 특히 한우낙지탕탕이는 당일 잡은 활낙지와 당일 손질한 최고급 한우만 사용하기 때문에 하루 전 예약 손님에게만 제공한다.
노 여사는 “좋은 재료가 준비되지 않으면 아예 팔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바다를 아는 사람만이 지킬 수 있는 원칙
이 식당의 운영 방식에는 어부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식당에서 쓰고 남은 낙지는 상태가 가장 좋은 것만 수협 공판장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볶음이나 연포탕 재료로 손질해 보관한다. 반대로 낙지가 부족하면 함께 조업하는 어민들에게 제값 이상을 주고 활낙지를 구입한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품질의 낙지를 구하지 못하면 그날은 미련 없이 문을 닫는다.
“중간 유통을 거친 낙지로는 손님께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식당은 저녁 시간에만 운영하고, 점심은 예약 손님만 받는다.
최근 기후 변화와 해수온 상승으로 갯벌은 점점 단단해지고 어획량도 줄고 있지만, 문 대표 부부는 매년 금어기를 철저히 지킨다.
“눈앞의 수익보다 갯벌을 지키는 것이 결국 최고의 낙지를 지키는 길입니다.”
이번 금어기에도 수족관에 보관해 둔 낙지가 모두 소진되자 미련 없이 문을 닫고 휴식을 택했다.
갯벌이 키우고, 사람의 손이 완성한 맛
식당 벽 한편에는 낙지의 효능을 소개한 《동의보감》의 구절이 걸려 있다.
“낙지는 성질이 평(平)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생김새는 문어와 비슷하나 작고, 비늘과 뼈가 없으며, 바닷가에서 산다.”
예로부터 낙지는 맛과 영양을 두루 갖춘 식재료로 평가받았으며, 오늘날에도 대표적인 고단백·저지방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특유의 감칠맛은 베타인(Betaine) 성분에서 비롯되며, 피로 해소와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을 주는 타우린(Taurine)이 풍부하다. 또한 양질의 단백질과 각종 무기질, DHA 등을 함유해 예로부터 원기를 북돋우는 보양식으로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좋은 낙지는 영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청정 갯벌이 길러낸 건강한 낙지와 이를 가장 맛있는 상태로 손님상에 올리는 사람의 정성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맛이 완성된다.
화려한 비주얼과 자극적인 양념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문홍배·노연님 부부는 유행을 좇지 않는다. 그들이 지키는 것은 신안과 무안 청정 갯벌이 길러낸 뻘낙지 본연의 맛, 그리고 손님과의 약속이다.
문홍배 대표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당을 크게 키우는 것보다 ‘직접 잡은 믿을 수 있는 뻘낙지를 쓰는 집’이라는 믿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평생 바다에 나가 좋은 낙지를 잡을 겁니다.”
45년 동안 갯벌의 숨결을 읽어온 남편의 손과 30년 가까이 그 낙지에 정성과 온기를 더해온 아내의 손.
두 사람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낙지 한 상에는 신안과 무안 청정 갯벌이 품은 자연의 풍요로움과 반세기에 걸친 장인의 세월이 오롯이 담겨 있다.
갯벌이 키우고, 사람의 손이 완성한 그 맛. 그것이 ‘신안무안뻘낙지’가 45년 동안 한결같이 지켜온 가장 깊은 맛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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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할매.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