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취재=이금숙·최점주 기자] 오해균 무안문화원장이 4월 10일 오후 무안문화원 집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영산강 용 축제’ 계획을 밝혔다.
오 원장은 이날 무안 연징산(淵澄山) ‘용샘’ 전설을 모티브로 한 ‘영산강 용 축제’ 구상을 밝히며,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 콘텐츠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오 원장은 “문화원은 봉사정신없이는 맡기 어려운 자리입”라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지키는 일이 제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오해균 원장은 2018년 2월부터 무안지역 문화를 이끄는 문화원장의 길을 걷고 있다. 오해균 원장은 총 30억 원 규모의 신축 문화원사 건립을 이끌며 문화원의 기반을 획기적으로 확충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사업에는 국비 12억 원이 포함됐고, 기존 30평 규모의 공간을 450평으로 확장하면서 문화활동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오 원장은 운영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공개 채용을 통해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 결과 젊은 회원을 유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회원 수는 약 500명 규모로 증가하며 문화원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한편, 지역 문화 부흥에 앞장서기 전 오해균 원장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삶은 또 다른 화제거리.
오해균 원장은 군 제대 후 ‘올림포스’ 전자시계 회사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월급은 7만 원. 그러나 탁월한 영업 실적을 올리며 인센티브를 포함해 월 40만 원 이상의 수입을 기록했고, 전국 판매 순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짧은 기간 동안 약 4000만 원을 모았으나, 주식 투자 실패로 전 재산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시계 도매 사업에 뛰어들어 약 5년간 성공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했다.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은 건설업이었다. 작은아버지가 추진하던 목포 ‘유달파크맨션’ 사업이 부도나자 이를 되살리기 위해 직접 나섰다. 자금이 없는 상황에서도 33명의 채권자를 일일이 설득해 공사를 재개했고, 조망권 문제로 반대하던 주민들과도 협의를 이끌어내 사업을 정상화시켰다. 결국 1989년 착공해 1991년 완공에 성공했다. 이 아파트는 목포 최초의 10층 건물로 기록됐으며, 분양 역시 큰 성공을 거뒀다.
건설업계를 떠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운수업과 농업에 종사했다. 이후 도전과 극복을 거듭해 온 그의 삶은 이제 지역 문화 발전이라는 새로운 결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오 원장의 여정과 성과를 지역 문화 발전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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