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취재=양기홍 . 이병삼 기자] 박관서 시인은 34년간 목포역·일로역·몽탄역·무안역을 오가며 철도 현장을 지켜왔고, 그 삶의 흔적을 시와 글로 기록해 왔다.
“간이역은 우리 인생과 닮았습니다. 젊을 때는 빠르게 달리지만, 나이가 들면 잠시 멈춰 서서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되지요.”
전남 무안에 사는 철도원 출신 시인 박관서. 그는 34년 동안 한국철도공사에서 근무하며 목포역과 무안 일대의 역을 지켜왔다. 목포역에서 임성리역, 일로역, 몽탄역, 무안역을 오가며 철도 현장을 지키는 한편, 그 삶을 시로 기록했다. 현재는 무안학연구소 소장으로 지역 문화와 역사 연구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3월 11일 무안학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간이역의 풍경과 철도원의 삶, 그리고 지역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놓았다. 이번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무안의 간이역 연재를 마무리한다.
막막했던 젊은 날…무안역은 ‘첫사랑의 간이역’
박 시인은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철도 공무원으로 임용됐다. 처음 발령받은 곳은 장성 인근의 작은 역인 안평역이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1985년 목포역으로 발령받으며 본격적인 철도 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목포역에 근무하면서 임성리역·일로역·몽탄역·무안역 등 무안 지역의 여러 역을 오가며 근무했다.
그가 처음 무안역에서 근무했을 때의 심정은 “막막함”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때는 젊은 시절이었잖아요. 마음속에는 문학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지만, 생업으로는 철도 일을 해야 했기에 마음이 늘 싱숭생숭했죠.”
당시 철도원의 근무 체계는 이른바 ‘철야·비번’으로, 아침 9시에 출근하면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24시간 근무한 뒤 하루를 쉬는 방식이다.
“간이역에서는 24시간 동안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다 보니, 마치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담아 쓴 시가 바로 ‘무안역’입니다.”
“산골 깊은 무안역 푸른 메모지 같은 / 유리창에 이마를 부비며 /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 박관서 「무안역」 중에서
그에게 유리창은 전하지 못한 고백을 적어 내려간 푸른 메모지였고, 승강장은 흩어진 청춘의 기억이 머무는 무대였다. 밤하늘의 별빛처럼 스쳐 간 순간들은 지금도 고요한 플랫폼 위에 겹겹이 내려앉아 있다.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아픈 첫사랑의 간이역.”
박 시인은 “무안역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의 마음이 바로 그 표현이었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단선 철로 위에서 이어지던 사람들의 삶
지금과 달리 당시 호남선은 대부분 단선이었다. 역무원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마주 오는 열차가 충돌하지 않도록 선로를 조정하는 일이었다.
여객 업무뿐 아니라 화물 취급도 중요한 업무였다.
“몽탄역에서는 쌀과 옹기를 많이 실었고, 임성리역은 연탄 공장이 여러 곳 있어 화물이 주로 석탄이었습니다. 명산역에서는 해산물도 많이 취급했죠.”

도로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역이 곧 마을의 중심이었다.
“역이 생기면서 마을이 만들어집니다. 일로, 몽탄, 사창, 명산 모두 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입니다.”
역은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역무원을 가족처럼 대했고, 역은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했다.
“24시간 근무를 하다 보니 주민들이 역으로 놀러 오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주민 집에 가곤 했죠. 소나 돼지를 잡으면 초대받아 함께 먹고 어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도둑 기차’도 흔했다
무배치 간이역에서는 역무원이 없어도 열차가 정차했고, 승객들은 자유롭게 타고 내렸다.
“사람들이 가난했던 시절이라 ‘도둑 기차’도 흔했습니다.”
통학 열차 안에서는 지역 학생들 사이에 묘한 세력 관계도 형성되곤 했다.

“처음엔 몽탄 학생들이 셌고, 나중에는 일로가 더 강했습니다. 열차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해서 한동안 철도경찰이 탑승한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그 시절 철도는 지역 청소년들의 또 다른 생활 공간이었다.
철도원의 삶이 시가 되다
박 시인이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였다. 그러나 집안 형편 때문에 일반고 대신 철도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철도 생활과 문학 사이의 간극은 오히려 그에게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처음에는 철도원의 일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남주 시인의 시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노동과 땀, 고통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철도원의 일상을 시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의 시집 『철도원 일기』, 『기차 아래 사랑법』 등에는 철도 현장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폐역을 문화공간으로… 지역과 함께한 철도
호남선 복선화 사업과 구조조정으로 많은 역들이 무인화되거나 폐역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몽탄역, 무안역을 무인역으로 전환하려 했을 때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역이 사라지면 마을도 함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 시인은 이때 역의 기능을 새롭게 전환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역을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일본 사례까지 조사하며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을 추진했고, 약 4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문화공간 조성 사업을 진행했다.
“앞으로 철도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느리게 여행하는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KTX 무안공항역, 지역의 힘의 축이 바뀐다”

2027년 12월에 개통 예정인 KTX 무안국제공항역에 대해서도 그는 큰 변화를 예상했다.
“1913년 호남선 개통으로 일로와 몽탄이 성장했듯이, 앞으로는 무안국제공항 주변이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공항과 KTX역이 결합되면 교통 구조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지역민들이 인천공항 대신 무안공항을 이용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공항과 철도역이 함께 있는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앞으로 무안이 ‘쉼과 여행의 공간’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슬픔은 우리만 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젊은 시절에 쓴 작품 ‘일로역 민들레’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자기들의 슬픔은 자기들만 안다고 / 나직이 나직이 하늘거리며 / 그대들 등 뒤로 사라지는 / 샛노란 얼굴의 민들레…”
그는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은 힘 있는 곳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지역은 늘 변두리가 되기 쉽지요.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슬픔과 희망이 있습니다. 서로 그것을 알아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간이역도 그렇고,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철도원의 삶을 지나 시인의 길로, 다시 지역사 연구자로 거듭나고 있는 무안학연구소장 박관서. 그가 들려준 철도원의 삶에는 느린 열차처럼 오래 남을 울림이 담겨 있다.
¤ 박관서 시인 프로필
▸전남 무안 거주 ▸무안학연구소 소장 ▸1996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신인 추천 등단
[저서]
▸시집: 『철도원 일기』, 『기차 아래 사랑법』, 『광주의 푸가』, 『너를 보내는 동안』
▸산문집: 『남도문학을 읽는 마음』, 『남도문학에 스민 김현』
▸지역사: 『각설이품바마을 무안일로지역 주민생애사』, 『무안의 길』 등
▸시노래: 음반 〈간이역 소식〉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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