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뒤로 오룡산 앞으로는 남악호수가 펼쳐진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춘 데다 남악신도시의 각종 편의시설로 해서 살기 좋은 옛 신흥마을 터에 들어온 한옥마을이 아담하다. 사진=문윤진
신도시가 개발되기 이전인 2,000년 무렵에 남악저수지에서 바라본 신흥마을 전경. 사진=목포대학교 박물관 제공

[공동취재=최점주·박관섭·문윤진 기자] 신도시 개발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신흥마을은 사라졌지만, 마을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기억에는 아직도 생생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청사와 의회, 각종 문화시설이 자리 잡은 남악신도시 일대에서 옛 신흥마을의 흔적을 찾아봤다.

2005년 전라남도청이 들어서면서 신흥마을은 크게 달라졌다. 현재 이 일대에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청사를 비롯해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 전라남도문화재단 국가유산연구소 등 주요 행정·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남악신도시 개발 이전, 이곳은 오룡산 자락에 자리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1987년 《마을유래지》에 따르면 당시 32가구, 120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쌀과 보리를 주된 소득원으로 삼고 마늘·고추·고구마 등의 특작물을 재배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도청 유치를 계기로 마을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자연마을이었던 응동 일대에는 주청사가 들어섰고, 신흥마을 터에는 소규모 주택단지가 조성됐다. 현재는 11채의 한옥이 남아 이름 없는 옛 마을의 흔적을 이어가고 있다.

사라진 신흥마을, 흩어진 공동체

신흥마을에는 1850년부터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운영된 마을 동계(洞契)의 전통도 있었다. 목포대학교 박물관의 2000년 당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동마을의 김해김씨와 신흥마을의 해주오씨가 각각 문중을 중심으로 동계를 운영하다가, 1959년에 두 동계를 통합해 합동계(合洞契)를 결성했다.

당시 작성된 <대동계 규약>에는 ▲계원이 객지에서 사망하여 출상하여도 부의(賻儀)한다 ▲계원의 가족이 마을 내에서 출상할 때 한하여 부의한다 ▲부의는 절대 현금으로 하지 않고 물품으로 한다 ▲상여는 3층으로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합동계는 계장·부계장·재무·서기 등 7인이 운영을 맡았으며, 초창기 계원은 56명이었다.

이후 신흥합동계는 1999년까지 매년 봄·가을에 모임을 이어갔다. 초창기에는 장례 때 부의 등 상부상조가 주된 기능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 앞 버스 승차장을 설치하거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공동체를 위한 활동으로 기능이 확대됐다. 하지만 마을이 해체되면서 주민들이 흩어졌고, 10여 채의 소규모 한옥촌으로 남으면서, 오랜 전통을 이어온 마을조직도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췄다.

마을의 문화환경, 그리고 마을 우물

현재 신도청 일대에는 특별시의회 도서관인 ‘책마루’와 갤러리 및 소공연장, 비즈니스룸, 관광안내센터인 ‘남악마루’, 도청 실내 ‘겨울정원’, ‘북카페’ 등 다양한 공동이용시설이 들어서 있다.

도시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지만 엣 신흥마을의 자랑이었던 자연환경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오룡산의 중앙 골짜기인 오작골 아래 자리했던 이 신흥마을은 앞쪽으로 남악저수지를 품어 자연생태가 살아 있는 환경을 이루고 있다.

주민들에게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은 마을 우물이다.

엄명자(88세) 할머니는 당시를 떠올리며 “예전 신흥마을 중앙에 있던 마을 우물물이 수질도 좋고 맛도 좋아서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다.”라며 “우리 집에도 우물이 있었지만 마을 우물물을 먹었고, 지금도 그 맛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전 수질도 좋고 맛도 좋아서 전 주민들이 식용으로 사용했던 신흥마을의 우물과 이를 증언하는 엄명자 할머니. 사진=목포대학교 박물관, 최점주

농업용수로 쓰이던 남악저수지는 지금은 ‘남악호수’로 불리며 수변공원으로 조성됐다. 예전에 남악호수 앞에 있던 작은 섬이 있었고, 간척 이후에는 동편뜰 앞의 ‘동네미터’로 불리던 산이 되어 앞뒤로 두 채의 주막이 생기면서 마을 주민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던 장소였던 작은 산(35m)은 현재 도시 숲으로 변모하였다.

엄 할머니는 “마을 앞 남악저수지 곁에 있던 동네미터의 작은 산에는 주막집 두 채가 있었다.”며 “지금은 섬이 많이 잘려 나가 사라져 관광홍보센터인 남악마루 곁에 작은 산으로 남아 있어서 안타깝다. 마치 사라진 우리 신흥마을 같아서 슬프기도 하다.”고 전했다.

당시 무안군 이로면에서 태어나 신흥마을로 시집와서 평생을 살아온 엄명자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상실감이 배어 있었다. 작은 산이 잘려 나간 것은 단순한 지형 변화 이상으로, 신흥마을의 정체성이 함께 훼손된 듯한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태환경과 마을의 역사

현재 남악호수와 주변 숲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전체면적 30,000㎢에 이르는 호수와 주변에는 토끼, 거위, 오리, 잉어, 붕어, 가물치, 자라, 개구리 등 각종 동물 및 어류와 함께 해송, 스트로브잣나무, 영산홍, 치자나무, 돈나무, 남천, 황금측백 등 상록수와 수생식물 그리고 꽃창포, 수련, 금불초, 붓꽃을 비롯한 수목 및 화초류 등 여러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도심 속 생태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무안청사 주변에는 부속 녹지를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남악 모두누리 열린숲’도 조성됐다. 남악호수 수변데크산책로를 비롯해 대숲쉼터, 생활밀착형숲, 수국산책로, 잔디광장, 맨발산책로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남악호수’는 1935년 축조된 기존 남악저수지를 신도시 개발 이후 친환경 생태호수로 정비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호수 내 설치된 약 352㎢ 크기의 물 위에 떠 있는 인공섬은 어류 산란 및 동물 서식 목적으로 2009년 4월에 추가 설치되었으며, 사계절 푸르른 수목과 계절별로 화사한 꽃이 만개하는 수상 식물이 심겨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함과 동시에 수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예전의 신흥마을 터에 들어온 한옥마을을 남악호수에서 바라본 전경으로 오룡산에 감싸인 아담한 한옥촌이 고즈넉하다. 사진=문윤진

마을 곳곳에 남아 있던 지명에서도 옛 신흥마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에 주민들이 일로의 삼향장을 오갈 때 넘었던 무등재와 그 아래의 오작골을 비롯해 진주골, 뒷매, 방구등, 야망재 등의 지명이 전해지고 있다.

역사적 흔적도 확인된다. 전남도청 개발 과정에서 목포대학교가 실시한 2000년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는 신흥유물산포지에서 삼국시대의 토기가 발견됐다. 수습된 유물은 회색 연질토기와 적갈색 연질토기, 회청색 경질토기편 등이다.

이외에 마을에는 여러 금석문도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현장 답사에서 대부분 확인하기 어려웠다. 마을 앞 남산에는 상여를 보관하는 곳집도 있었다. 상여는 주민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주민들이 1년 동안 유안당(遺安堂)의 당주인 김장성(김성규) 댁에서 품을 팔아 그 대가로 김장성 댁이 사용했던 상여를 마을 공동재산으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마을 뒤 ‘가주뫼’라고 불리던 김해김씨의 선산에는 신흥마을 입향조인 김여서(金汝瑞)의 부친인 김제(金濟)의 무덤이 있다.

원래 영암군 서호면 화소에서 세거하던 김제(金濟)가 임진왜란을 맞아 수문장으로 고하도 전투에 참여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들인 김여서가 부친의 시신을 찾았으나 쉽게 찾지 못했다. 그는 오랫동안 시신을 찾으려 동분서주하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시신을 영산강의 나불도에서 찾았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시신은 전혀 부패하지 않고 금방 별세한 모습이라 사람들은 전부 놀랐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부친의 시신을 오룡산에 안장한 후 시묘하면서 신흥마을로 입향하여 정착했다고 한다.

새로운 주민들, 새롭게 흥하는 마을의 미래

신도시 개발과 행정구역의 변화 속에서 신흥마을의 역사와 정체성은 더욱 희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현지 주민들은 망향비와 같은 상징적 장치뿐 아니라, 현재 한옥 전용지구인 마을의 건축 제한을 완화해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취락공간으로 발전시킬 행정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신흥마을은 분명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주민들은 마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을 형성 초기 한옥을 지어 입주해 9년째 거주하고 있는 전직 교사이자 시인 최기종(70세) 씨는 “우리 마을은 뒤의 오룡산과 앞의 남악저수지가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펼쳐진 자연생태와 함께 남악신도시의 각종 편의시설까지 가까이 있어 생활하기 좋은 곳”이라며 “현재 11가구의 주민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남도청 뒤편에는 약 70여 채의 가든하우스 건립이 진행 중이며, 따라서 단순한 행정중심공간에서 행복한 거주공간의 역할을 더할 예정이어서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결국 신흥마을은 광주와 전남을 잇는 교량적 구실을 하며, 새로운 정체성과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이 태어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신흥마을은 진정한 의미의 ‘새롭게 흥하는 마을’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참고문헌

김경수, 「영산강 유역의 경관변화 연구」(전남대, 2001)

《남악신도시 개발예정지역내 문화유적》(목포대 박물관, 2000)

《마을역사자료조사》(무안문화원, 2017)

《마을유래지》(무안군, 1987)

신흥마을에 “무등산이 있어요”라면서 간척되기 이전 신흥마을에서 일로로 넘어가던 낮은 고개인 무등산을 가리키는 최기종 시인과 그가 사는 한옥인 <남뫼시사>의 모습이다. 사진=최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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