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호 작가가 무안의 흙과 분청의 정신을 담아온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병삼

“무안분청이라고 말하면서 무안의 흙을 쓰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무안분청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그 지역의 도자기는 결국 그 지역의 흙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지난 27일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작업실 ‘ᄆᆞᆯ아혜요’에서 만난 도예가 김문호 작가는 ‘무안분청’의 출발점을 ‘무안의 흙’에서 찾았다. 정제된 기성 점토가 대량 공급되는 시대에도 무안의 흙을 고집하는 것은 흙의 지역성과 고유한 성질을 작품에 담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무안의 흙에 대한 철학과 세 스승을 거치며 쌓은 도예의 길, 판상기법으로 구축한 조형세계와 ‘오감의 미학’, 무안 도자문화의 미래까지 그의 도예 인생을 들어봤다.

“물레와 안목, 그리고 흙을 대하는 정신을 배웠습니다”

김 작가의 도예 인생에는 젊은 날 만난 세 명의 스승이 있다. 군 전역 직후 무안 몽탄에서 만난 이정현 작가와 최차란 도예가는 도예의 문을 열어준 첫 스승들이었다.

“첫 번째 스승님에게서는 물레 기술을 배웠고, 두 번째 스승님에게서는 작품을 바라보는 안목을 배웠습니다. 곡선 하나, 두께 0.1㎜의 차이가 작품의 기운을 얼마나 크게 바꿔 놓는지 그때 알게 됐습니다.”

세 번째 스승은 한국 현대 분청사기를 대표하는 윤광조 작가였다. 윤광조 문하에서 기법을 넘어 도예가가 갖춰야 할 태도와 정신을 배웠다. 그는 한국 현대 분청의 흐름을 고유섭과 혜곡 최순우, 윤광조로 이어지는 맥락에서 바라본다.

“혜곡 최순우 선생님께서 윤광조 선생님에게 분청의 길을 권하셨고, 저는 윤 선생님에게 분청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계보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서 있는 땅의 흙을 어떻게 해석해 나의 조형 언어로 담아내느냐입니다.”

이후 목포대학교에서 조소(彫塑)를 전공하면서 그의 작품세계는 ‘그릇’에서 입체적 공간을 다루는 ‘조형예술’로 확장됐다.

‘ᄆᆞᆯ아혜요’ 입구. 곧게 뻗은 대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하는 풍경에서도 김문호 작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사진=이병삼

“황토가 아닙니다, 도자 재료로는 적토입니다”

김 작가는 흔히 ‘무안 황토’라고 부르는 흙을 도자 재료학적으로는 ‘적토(赤土)’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분이 풍부한 무안의 적토는 높은 열을 만나면 붉거나 짙은 갈색을 띤다. 모래와 장석류 등이 섞여 있어 거친 질감을 나타내며, 여기에 백토를 입히는 분장(粉粧)기법이 더해지면 붉은 흙과 흰 백토의 대비로 분청 특유의 생동감이 살아난다.

김 작가는 흙을 물에 풀어 불순물을 걸러내는 ‘수비(水飛)’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고, 거친 흙을 덩어리째 빻아 사용하는 ‘무수비’ 방식을 고집한다.

“거친 상태가 흙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지나치게 곱게 정제하면 흙이 가진 성질과 생명력이 사라집니다. 손으로 만졌을 때 ‘이것이 붉은 땅에서 온 흙이구나’ 하는 감촉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같은 철학은 현장 조사와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 작가는 2000년 목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무안분청사기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청계와 몽탄 일대 가마터를 답사하며 문헌 기록과 파편을 대조해 무안 분청의 역사와 흙의 가치를 연구해 왔다.

“도자기가 꼭 둥글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판상기법으로 빚은 집 모양 작품. ‘도자기는 둥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김문호 작가의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사진=이병삼

김 작가의 작업실에는 둥근 항아리나 사발뿐 아니라 사각·오각형 그릇, 비뚤어진 탑, 한옥을 단순화한 조형물, 사람과 동물을 표현한 토우 등 다양한 작품이 자리한다.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기법은 ‘판상(板狀) 작업’이다. 점토를 판으로 밀어 다각형으로 자르고 이어 붙여 입체적인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다. 여기에 토우와 코일링, 틀, 물레 작업을 자유롭게 결합한다.

“도자기가 꼭 둥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흙은 집이 될 수도 있고 탑이 될 수도 있으며, 사람이나 동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형태의 한계를 스스로 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조소를 전공하며 익힌 공간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조형세계의 바탕이 됐다. 특히 탑과 한옥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소재로,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김 작가는 작품의 마지막 결정권은 ‘불’에게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흙으로 형상을 만든다면 그 다음 완성은 가마 속 불의 몫입니다. 같은 흙과 유약을 사용해 똑같이 만들어도 불길이 어떻게 지나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옵니다.”

그는 이를 ‘불의 심판’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계산을 넘어선 불의 작용을 받아들일 때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분청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ᄆᆞᆯ아혜요의 가마. 김문호 작가는 분청 작품의 마지막 완성은 ‘불의 몫’이라고 말한다. 사진=이병삼

“도자기는 눈으로만 보는 미술이 아닙니다”

김문호 작가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오감(五感)의 미학’이다.

그는 도자기를 눈으로만 감상하는 예술품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표면을 만지고, 찻잔의 온기를 느끼며, 두드려 소리를 듣는 등 온몸으로 경험해야 도자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관람객에게 작품을 직접 만져보라고 권한다.

“무수비 적토가 만든 거친 표면과 울퉁불퉁한 촉감을 손끝으로 느껴봐야 왜 정제되지 않은 흙을 사용하고 이런 형상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안 적토의 투박한 표면은 촉각을, 불길이 남긴 색채와 비정형의 형태는 시각을 자극한다. 다완과 찻잔은 실제 사용하면서 일상 속 교감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도자기는 관람객의 감각을 통해 다시 완성되는 ‘교감의 매개체’다. 작품에 구체적인 제목을 붙이지 않는 것도 관람객의 자유로운 해석을 위해서다.

“예술이 마을 주민들의 밥이 되어야 합니다”

김 작가에게 도예는 개인 작업실에 머무는 예술이 아니다. 그는 ‘월선리 예술인촌’ 조성과 ‘무안분청문화제’의 초창기 기틀을 다지는 데 힘을 보탰다.

그가 강조하는 원칙은 “예술이 마을의 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삶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어야 문화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무안분청문화제 역시 지역의 흙과 역사적 정체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축제가 지속가능하려면 그 지역만의 대체할 수 없는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무안에는 붉은 흙과 수많은 가마터, 그 속에서 피어난 분청사기의 역사가 있습니다.”

무안 도자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급한 과제로는 ‘옛 가마터의 체계적인 조사와 보존’을 꼽았다.

“가마터의 사금파리 한 조각도 무안분청의 역사를 증명하는 학술자료이자 문화유산입니다. 무안 전역의 가마터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출토 유물과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는 ‘무안 분청사기 박물관’ 건립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김문호 작가가 제자들과 함께 작품에 유약을 입히고 있다. 작업 과정 자체가 배움의 현장이 된다. 사진=이병삼

이와 함께 청계농공단지를 중심으로 성장한 생활자기 산업과 작가 중심의 분청 도예도 ‘무안 도자문화’라는 틀 안에서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활자기 산업은 좋은 그릇을 많은 사람이 편하게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반면 작가의 분청은 무안 흙의 성질과 작가의 철학을 담아 예술적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산업과 예술이라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갈 때 지역 도자문화도 발전합니다.”

그가 그리는 무안 도자문화의 미래는 옛 가마터의 보존에서 생활자기 산업으로, 다시 작가들의 창작 활동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다. 과거의 유산을 오늘의 산업과 예술로 연결해야 무안 도자문화의 정체성도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만 안 새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만드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무안의 흙과 분청 이야기가 나오자 김 작가의 이야기는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남들이 정제된 기성 점토를 사용할 때 그는 무안에서 직접 흙을 구해 말리고 빻았다. 둥근 그릇이 도자기의 전형처럼 여겨질 때는 흙판을 이어 붙이는 판상기법으로 탑과 한옥, 사각 형태의 조형물을 만들었다. 작품을 눈으로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져 흙의 질감을 느껴보라고 권하는 것도 그의 작업 방식이다.

“도자기를 꼭 남들처럼 예쁘고 매끈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릇으로서 물만 새지 않으면 기본은 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사람의 고민과 철학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흙이 가진 본래 성질을 얼마나 살려내느냐입니다.”

‘ᄆᆞᆯ아혜요’에서 만난 그의 분청은 반듯하거나 매끈하지 않았다. 표면은 거칠고 울퉁불퉁했으며 때로는 비뚤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거친 표면과 불규칙한 형태에는 흙의 성질을 억지로 감추지 않으려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설명한다. 옛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전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조형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에는 무안의 붉은 흙이 있다. 여기에 작가의 손길과 불이 지나간 흔적이 더해지면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결국 그의 작업은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진다.

‘이 작품은 왜 다른 곳이 아닌 무안에서 태어나야 하는가.’

김 작가는 그 답을 ‘무안의 흙’에서 찾는다. 무안에서 난 흙을 직접 구해 빻고, 그 흙의 거친 성질을 살려 자신만의 형상을 만든 뒤 마지막 완성은 불에 맡긴다. 그에게 ‘무안분청’은 단순히 전통 기법을 재현하는 도자기가 아니다. 무안의 흙에 작가의 생각과 시대의 감각을 담아 새롭게 빚어내는 작업이다.

그것이 김문호 작가가 생각하는 ‘무안분청’이며, 앞으로도 그가 지켜가려는 도예의 길이다.

ᄆᆞᆯ아혜요 전시실. 김문호 작가의 다양한 도예 작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이병삼

❉ 도예가 김문호 약력

전라남도 목포 출생

목포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 졸업(미술학 석사)

석사학위논문 「무안분청사기에 대한 연구」(2000)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전담교수(전)

중국 완남성 대리대학 객원교수(전)

월선리 예술인촌 조성 및 무안분청문화제 기획 참여

현재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도예공방 ‘ᄆᆞᆯ아혜요’ 운영

개인전 18회, 국내외 그룹전 및 한·일 도예 교류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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