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라 ‘품바’ 정신 계승… 오늘의 삶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
[공동취재=정병수‧유종‧이병삼 기자] 무안에서 탄생한 대한민국 대표 공연예술 ‘품바’가 오늘의 시대와 호흡하는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창작극 ‘품바ZERO’가 오는 12월 9일 오후 2시와 7시 30분, 두 차례에 걸쳐 무안 승달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공연된다.
이번 공연은 ‘2026 전남문화재단 공연장협력예술단체지원사업’의 하나로 마련됐으며, 무안의 지역 예술단체 ‘더아트컴퍼니 연’(대표 나상문)이 주관한다.
더아트컴퍼니 연은 무안의 유산과 생활문화 자원을 무대예술로 풀어내고 지역 예술인들과 협업하며 지역의 이야기를 문화콘텐츠로 만들어가고 있는 연극단체다.
무안시니어신문 공동취재진은 지난 20일 공연 준비가 한창인 일로백련문화센터를 찾아 ‘품바ZERO’의 대본과 주연을 맡은 나상문 대표를 만났다. 나 대표에게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과 김시라의 ‘품바’를 오늘 다시 무대에 올리는 이유를 들었다.

김시라의 ‘품바’, 오늘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다
‘품바ZERO’는 고(故) 김시라 선생이 창작한 ‘품바’의 해학과 풍자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춰 이야기와 음악, 연출을 새롭게 구성한 작품이다.
김시라의 원작 ‘품바’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민초들의 삶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냈다면, ‘품바ZERO’는 그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는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삶으로 시선을 옮긴다.
작품에서는 ‘펜을 꺾고 깡통을 든 남자’가 2026년 무안 한복판에 등장한다. 그는 한바탕 신명과 풍자를 풀어놓으며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과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춘다.
공연 포스터에 내건 ‘사람을 잊고 산 죄, 기억하는 무기형!’이라는 문구에는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압축돼 있다. ‘가난한 자의 노래가 세상을 묻는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묻는다’는 메인 카피처럼, 관객들에게 품바의 눈으로 오늘 우리의 삶과 사회를 돌아보도록 질문을 던진다.
제목의 ‘제로(Zero)’에는 모든 것을 비워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자유와 신명의 의미를 담았다. 부제인 ‘비우고 채우자꾸나’ 역시 욕심과 상처를 비워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삶과 희망을 채우자는 뜻이다.
나 대표는 “김시라 선생님의 품바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며 “과거를 재현하는 품바가 아니라 오늘의 삶을 이야기하는 품바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1인극 전통 살리고 록·트로트·발라드까지 접목
공연 형식에서도 전통과 현대의 결합을 시도했다.
배우 한 명과 고수가 무대를 이끄는 전통적인 품바 1인극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드라마와 움직임, 음악 등 현대 연극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음악도 기존 품바의 타령조에 머물지 않는다. 전통적인 장단을 바탕으로 현대음악과 록(Rock), 트로트,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해 새로운 신명과 무대 분위기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대본을 직접 쓴 나상문 대표가 주인공 ‘품바’로 무대에 오른다. 연출은 동신대학교 뮤지컬·실용음악과 김민호 교수가 맡았으며, 극단 갯돌 출신으로 현재 광주시립창극단 단원인 김상호 씨가 고수로 참여한다.
나 대표는 현재 작품을 드라마와 움직임, 노래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배우 한 사람이 극 전체를 끌어가야 하는 1인극인 만큼 체력과 집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1인극으로 진행되는 만큼 체력적·정신적 부담이 큽니다. 연출가와 음악감독, 안무감독 등 전문 스태프들과 긴밀하게 호흡하면서 매일 연습실을 찾아 작품을 다듬고 있습니다.”
“지금이 품바를 다시 이야기해야 할 때”
나 대표가 ‘품바ZERO’를 만들기로 한 데에는 오늘날 ‘품바’가 본래 지녔던 연극적 가치와 시대정신을 다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오늘날 품바가 시장이나 축제장에서 볼 수 있는 상업적인 각설이 공연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김시라 선생님의 오리지널 품바는 단순한 각설이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의 아픔을 날카롭게 비추면서도 해학과 풍자로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깊이 있는 연극이었습니다.”
특히 나 대표는 ‘지금’ 품바를 다시 무대에 올리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무안에서 품바를 직접 보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가 아직 지역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 품바를 직접 보고 기억하는 지역 어르신들이 아직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이 품바를 다시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르신들에게는 아련한 기억과 감동을 되살려드리고, 젊은 세대와 학생들에게는 우리 고장 무안이 품바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그에게 품바의 부활은 단순히 옛 공연 한 편을 다시 무대에 올리는 일이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역의 문화자산을 오늘의 세대와 연결하고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품바가 무안에서 태어났다는 자부심이 가장 큰 힘”
‘품바ZERO’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지역 문화예술계의 협력도 힘을 보탰다.
특히 일로백련문화센터 임성주 센터장은 과거 인의예술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축적한 품바 관련 자료와 연구 내용을 공유하고, 무안군과의 협력 과정에도 힘을 보탰다.
나 대표에게 작품을 만들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은 결국 ‘무안’이었다.
“김시라 선생님의 원작 정신을 이어받으면서 1980년대 이후 현대사회의 모습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원동력은 품바가 바로 이곳 무안에서 태어났다는 자부심입니다.”
그는 이어 “품바를 무안에서 새롭게 되살려 지역민들이 그 가치와 의미를 함께 되새기고, 앞으로 무안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품바ZERO’는 과거의 명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김시라의 품바가 품었던 해학과 풍자, 민초들의 삶과 시대정신을 오늘의 언어와 음악, 이야기로 다시 풀어내면서 ‘무안에서 태어난 품바를 어떻게 오늘의 문화유산으로 이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가난과 소외 속에서도 웃음과 신명을 잃지 않았던 품바의 목소리가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무안에서 울려 퍼진다. 12월 9일 무대에 오르는 ‘품바ZERO’가 무안에서 태어난 품바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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