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수 명장이 50여 년간 분청사기를 빚어온 도예 인생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이병삼

1600여 가지 유약 실험으로 무안분청 연구

무안군 몽탄면 사천리에 자리한 ‘분청사기명장전시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크기와 형태, 빛깔이 각기 다른 분청사기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한 작가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문양과 표현 방식이 다채롭다.

이 작품들을 빚어낸 주인공은 김옥수 명장이다. 10대 시절부터 흙을 만지고 무안 곳곳의 옛 가마터를 누벼온 그는 분청사기 파편 하나를 주워도 문양과 유약을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직접 재료를 배합해 가마에 넣으며 실험을 거듭했다. 그렇게 쌓은 유약 실험 데이터만 1600여 가지에 이른다.

김 명장은 16년에 걸친 도전 끝에 2008년 호남 최초로 도자기 분야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됐다. 그러나 그에게 ‘명장’이라는 칭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무안분청의 뿌리와 특징은 무엇이며, 이를 오늘의 도자기로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라는 화두다. 반세기 가까이 흙과 불 앞에서 그가 천착해온 질문이기도 하다.

지난 27일 몽탄면 사천리 ‘분청사기명장전시관’에서 김옥수 명장을 만나 50여 년간 무안분청을 연구하고 작품으로 빚어온 이야기를 들었다.

17세 소년, 가마터 파편에서 무안분청의 뿌리를 찾다

호남 최초 도자기 분야 ‘대한민국명장’인 김옥수 명장. 4대째 질그릇과 도자기를 빚어온 가업을 이어받아 50여 년간 전통 도자기 제작과 분청사기 연구에 매진해 왔다. 사진=무안요 제공

질그릇과 도자기를 굽던 집안에서 자란 김 명장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물레와 가마를 접했다. 외가 역시 질그릇을 굽던 장인 집안이었다. 10대 후반 본격적으로 도예의 길에 들어선 그는 몽탄을 비롯한 무안 일대의 옛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땅에 흩어진 분청사기 파편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에게 깨진 분청 파편은 단순한 자기 조각이 아니었다. 옛사람들이 어떤 흙을 쓰고 어떤 문양을 새겼는지, 또 어떤 유약을 입히고 불을 다뤘는지를 보여주는 ‘실물 교과서’였다.

“당시 가마터에는 파편이 정말 많았습니다. 하나씩 주워 와 문양과 유약을 살펴봤죠. 도자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옛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파편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도요지 조사로 이어졌다. 그는 몽탄면 사천리와 대치리를 비롯한 무안 곳곳의 옛 가마터를 직접 찾아다니며 조사했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도요지도 추가로 확인했다. 이러한 현장 조사 성과는 이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정리됐다.

수십 년 동안 가마터를 누비며 모은 분청사기 파편은 김 명장의 작품 세계를 떠받치는 밑바탕이자, 무안분청의 특징과 제작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됐다.

일본 고서에서 다시 확인한 무안 도자의 가치

오랫동안 모아온 분청사기 파편의 가치는 일본에서 관련 문헌을 접하면서 새롭게 조명됐다. 김 명장은 일본 전시 등을 통해 야마다 만키치로(山田萬吉郞, 1902~1992)가 지은 “미시마 하케메(三島刷毛目)”를 접했고, 책에 실린 그림 자료와 자신이 몽탄과 무안 일대에서 수집한 파편들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책 속의 문양과 기법 가운데 상당 부분이 무안 가마터에서 수집한 파편과 연결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현장 자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특히 무안에서 생산된 자기가 일본에서 ‘무안모노(務安物)’라는 이름으로 인식됐다는 사실은 그에게 각별하게 다가왔다. 이후 김 명장은 가마터에서 수집한 분청사기 파편과 문헌자료, 유약 실험을 연결해 무안분청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에 더욱 몰두했다.

‘분청사기명장전시관’에 전시된 야마다 만키치로의 책과 무안 가마터 수습 파편. 책에 수록된 문양과 기법이 실제 파편과 거의 일치한다. 사진=이병삼

1600여 가지 실험으로 확인한 ‘무안 흙’의 힘

김 명장이 꼽는 무안분청의 가장 큰 경쟁력은 ‘흙’이다. 그는 무안의 흙이 치밀하고 강도가 높아 고온에서 구웠을 때 단단한 자기질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무안분청이 특별한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흙입니다. 좋은 흙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가마가 들어섰고, 좋은 그릇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는 이러한 생각을 경험에만 맡겨두지 않았다. 장석과 조개껍질, 재와 황토 등 천연 재료의 배합 비율을 달리하고 소성 온도를 바꾸면서 반복적으로 시험했다. 그렇게 축적한 유약 실험 데이터가 1600여 가지에 이른다.

특히 김 명장이 강조하는 것은 소성 온도다. 그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1250도 안팎의 고온에서 번조했을 때 단단하면서 맑은 소리를 내는 분청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잘 구워진 분청을 두드려 보면 쇠붙이처럼 ‘땡땡’ 하는 맑은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무안의 분청을 ‘땡땡이 분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고 배합 비율과 온도, 결과를 기록하고 비교해 온 것은 김 명장이 평생 지켜온 작업 방식이다. 그에게 도예는 예술인 동시에 끊임없는 실험과 검증이 필요한 연구의 영역이다.

무안요 가마. 김옥수 명장은 이곳에서 수많은 작품을 구워내는 한편, 다양한 유약을 직접 배합하고 실험하며 자신만의 분청사기 기법을 발전시켜 왔다. 사진=무안요 제공

7전 8기 끝에 오른 대한민국명장

명장에 이르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김 명장은 오랜 기간 대한민국명장에 도전했고, 16년 만인 2008년 여덟 번째 도전 끝에 도자기 분야 대한민국명장에 이름을 올렸다. 말 그대로 ‘7전 8기’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도 물레를 놓지 않았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흙을 만지고 가마에 불을 지폈다. 노력한 만큼 언젠가는 결실을 맺는다는 믿음이 그를 버티게 했다.

그가 후배 도예인들에게 기술에 앞서 인성과 자세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흙과 불을 대하는 태도, 실패를 견디며 다시 도전하는 끈기가 결국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옛것 그대로 만들면 모사품… 나는 오늘의 김옥수 분청을 만든다”

김 명장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철학은 ‘재현을 넘어선 창조’다. 수백 년 전의 전통 기법과 재료를 배우고 계승하되, 그것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박지와 조화 등 전통적인 분청 기법을 바탕으로 산수와 현대적인 문양을 표현하고, 오랜 유약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색조를 만들어왔다. 전시관에 놓인 작품들이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표정을 지닌 것도 이 때문이다.

“옛날 것을 그대로 만들면 결국 모사품입니다. 전통을 배우되 거기에 지금을 사는 작가의 생각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의 작품에 시대와 작가의 이름이 함께 남는 것이다.

“제가 떠나고 100년, 200년이 지난 뒤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그 시대 김옥수가 만든 그릇’이라고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만드는 도자기가 훗날 문화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옥수 명장의 작품. 박지·조화 등 전통 분청 기법으로 산수와 현대적 문양을 표현하고, 오랜 유약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색조를 구현했다. 사진=이병삼

사라지는 가마터 보존하고 ‘무안분청 박물관’ 세워야

반세기 가까이 무안의 가마터를 지켜본 김 명장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옛 가마터의 훼손이다. 저수지와 도로, 주택 건설 등 개발 과정에서 가마터가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이라도 남아 있는 가마터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발굴해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선시대 분청사기 생산에서 근현대 도예, 오늘날 생활자기 산업으로 이어지는 무안의 도자 역사를 하나의 문화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명장의 마지막 바람은 평생 모은 분청사기 파편과 1600여 가지 유약 실험 자료, 무안지역 도예인들의 기록을 한곳에 모을 ‘무안분청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제가 가진 자료를 혼자 가지고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이 자료를 바탕으로 더 깊이 연구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꿈꾸는 박물관은 옛 도자기를 진열하는 데 그치는 공간이 아니다. 무안의 도요지와 출토 파편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후대 도예인을 교육하며, 현대 작가들의 창작까지 이어지는 도자문화의 거점이다.

17세 소년이 가마터에서 주운 작은 분청 파편 하나에서 시작된 김옥수 명장의 여정은 반세기를 지나고 있다. 그동안 그가 찾아 헤맨 것은 단순히 옛 도자기의 재현이 아니었다. 무안의 흙과 선조들의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시대에 맞는 작품으로 다시 빚어 다음 세대에 건네는 일이었다.

50여 년 동안 흙을 만져왔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연구하는 도예가’라고 말한다. 김옥수 명장이 오늘도 흙을 빚고 가마에 불을 지피는 이유다. 그가 남기고 싶은 것은 그릇 몇 점이 아니라, 100년 뒤에도 ‘무안분청’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문화유산이다.

2016년 개관한 ‘분청사기명장전시관’. 김옥수 명장의 작품과 무안·인근 지역에서 수집한 분청사기 파편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분청사기 제작 체험도 할 수 있다. 사진=이병삼

❉ 김옥수 명장 약력

– 대한민국명장 제459호(08년 호남 최초)

– 중소벤처기업부 백년소공인 선정

– 호남대학교대학원(석사) 졸업

– 개인전 8회, 국내외 초대전 및 교류전 143회

– 대한민국훈장 산업포장 수훈

– 대통령상, 금상, 동상, 전남도문화상, 영호남 동서문화상 수상

– 고용노동부 국가기술자격심의 전문위원(현)

– 대한민국명장 선정심사위원(현)

– 전국광역시·도 명장선정 및 우수숙련기술인 선정심사위원(현)

– 국가무형유산 문형문화재 심사위원(현)

– 전국공예품대전, 전국관광기념품대전 심사위원 역임

– 전국기능경기대회 도자공예 심사장 역임

– 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역임

– 전라남도 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역임

– 호남대학교대학원 및 국가공무원 연수원 겸임교수 역임

– 전남·광주기능경기대회 심사장 및 공예분과 위원장 역임

– 대한민국명장회 호남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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