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느러지전망대에서 바라본 느러지. 영산강이 굽이돌며 빚어낸 지형이 한반도를 닮았다. 사진=이병삼

[공동취재=정병수·유종·이병삼 기자] 벼들이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고개 숙인 들판 너머로 파란 영산강이 유유히 흐른다. 가을이 깊어가는 지난 12일, 무안의 가을을 만나기 위해 몽탄면 이산리 ‘느러지’로 향했다.

느러지는 목적지만 보고 돌아오기에는 아쉬운 곳이다. 굽이치는 영산강을 따라 포구와 옛 철길, 코스모스 꽃밭과 정자를 만나고, 그 길에서 조선의 두 선비 한호 임연과 금남 최부의 자취도 만난다. 그래서 느러지 여행은 ‘어디를 보았느냐’보다 ‘어떻게 그곳까지 갔느냐’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강 건너에서 먼저 만나는 한반도 지형

느러지의 온전한 모습을 보려면 먼저 영산강 건너편 나주시 동강면 느러지전망대로 가야 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영산강이 S자로 크게 굽이돌며 만들어 놓은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한반도를 닮았다.

담양 용추봉에서 발원한 영산강은 장성과 나주, 무안을 지나 목포 하구언을 거쳐 바다로 향한다. 나주평야에 이르면 강폭이 넓어지고 흐름도 느려진다. 특히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와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사이에서는 크게 굽이치며 독특한 물돌이 지형을 이룬다.

이곳을 ‘느러지’ 또는 ‘늘어지’라 부른다. 이름처럼 강물마저 서두르지 않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영산강은 바다로 가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강을 건너 느러지로 가는 길

전망대에서 느러지를 바라본 뒤 몽탄대교를 건너 다시 무안으로 들어선다. 이제부터 느러지 여행의 또 다른 시작이다.

자동차로 달려도 좋지만 여유가 있다면 자전거가 더 어울리는 길이다. 영산강 자전거길을 천천히 달리다 보면 강가의 작은 포구와 산자락 사이로 옛 철길의 흔적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예전 호남선 열차는 몽탄역에서 명산역으로 가기 위해 이곳의 터널 3개를 지나야 했다.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옛 철길과 터널만 남았지만, 강과 산 사이를 달렸던 철길은 근대 교통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옛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와 영산강을 끼고 달렸을 풍경을 떠올리며 강길을 따라간다.

옛 호남선 몽탄2터널. 호남선 복선화로 철로가 이설되면서 몽탄역과 명산역을 잇던 옛 철길과 터널은 폐선됐다. 사진=이병삼

옹기를 싣고 떠나던 석정포

조금 더 가면 석정포를 만난다. 지금은 조용한 강변이지만 한때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영산강의 중요한 포구였다.

몽탄면 몽강리 일대에서는 조선 후기부터 1970년대까지 옹기와 질그릇을 생산했다. 1960년대에는 주민 약 90호가 옹기 생산에 참여하고 4개의 가마와 7개의 공방이 운영될 정도로 활기를 띠었다.

마을에서 만든 옹기는 석정포에서 돛배에 실려 남해안과 제주 등으로 팔려나갔다. 반대로 옹기의 원료인 점토와 고령토는 강 건너 나주 동강 일대에서 배로 들어왔다. 목포와 영산포를 오가던 돛배도 이곳에서 쉬어갔다.

영산강은 단순히 흐르는 강이 아니었다. 길이었고 시장이었으며 사람과 물자를 이어주는 삶의 통로였다. 석정포는 그 시절 영산강의 기억을 품고 있다.

한때 옹기와 물자를 실은 배들이 오가며 번창했던 석정포구. 지금은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변에 옛 포구의 흔적을 알리는 상징물만 남아 있다. 사진=이병삼

축제가 끝난 뒤에도 코스모스는 핀다

강길을 따라가면 넓은 코스모스 꽃밭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식영정 일원에서는 ‘2026 몽탄 코스모스축제’가 열렸다. 축제는 끝났지만 코스모스는 여전히 가을바람에 몸을 흔들고, 꽃길을 걷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2021년 이산리 일원 약 1만 6천㎡에 꽃밭을 조성하면서 시작된 축제는 이제 몽탄의 가을을 알리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매력은 꽃만이 아니다. 코스모스 너머로 영산강이 흐르고 그 곁에는 오래된 정자 식영정이 자리한다. 자연과 역사, 사람의 이야기가 한 풍경 속에 포개져 있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식영정 일원의 코스모스가 만개해 가을 정취를 즐기려는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이병삼

영산강 제2경 ‘몽탄노적’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영산강제이경(榮山江第二景) 몽탄노적(夢灘蘆笛)’이라 새겨진 표지석을 만난다. ‘꿈여울에서 들려오는 갈대피리 소리’를 빗댄 이름이다.

표지석 뒤편에는 소설가 문순태의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에서 영산강을 묘사한 글이 새겨져 있다. 작가는 달빛을 받은 영산강을 거대한 생명체처럼 그려냈다.

“달빛 속에서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앉은 영산강의 모습은 햇빛을 머금었을 때보다 훨씬 생명감이 느껴졌다.”

표지석 앞에서 강을 바라보면 소설 속 문장과 실제 영산강의 풍경이 겹쳐진다. 여행길에서 문학을 만나는 순간이다.

‘식영정’과 ‘연비어약’ 현판. ‘식영(息營)’에는 세속의 영리를 좇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뜻이, ‘연비어약(鳶飛魚躍)’에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사진=이병삼

식영정에서 만난 한호 임연

코스모스 꽃밭 가까이에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인 무안 식영정(息營亭)이 있다.

식영정은 한호(閑好) 임연(林堜, 1589~1648)이 무안에 터를 잡은 뒤 학문을 논하고 시를 읊으며 지내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임연은 여러 관직을 거친 뒤 말년에 영산강의 산수를 찾아 이곳에 정착해 주변 문인들과 교류했다.

‘식영정’과 ‘연비어약’ 현판. ‘식영(息營)’에는 세속의 영리를 좇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뜻이, ‘연비어약(鳶飛魚躍)’에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사진=이병삼

식영정 마루에 앉으면 임연이 왜 이곳을 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영산강이 펼쳐지고 멀리 동강 들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강물은 느리게 흐르고 바람은 막힘없이 정자를 지난다.

식영정의 ‘식영(息營)’에는 세속의 영리(營利)를 좇는 삶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위에 걸린 ‘연비어약(鳶飛魚躍)’ 현판도 눈길을 끈다. 『시경(詩經)』 「대아(大雅)」에서 유래한 말로, ‘솔개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는 뜻이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했던 선비의 뜻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을 찾은 문인들의 제영시는 현재 확인되는 것만 28명 92편에 이른다. 식영정이 단순한 정자를 넘어 영산강 유역 선비들의 교유와 문학 활동이 이루어진 인문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무안 식영정. 한호 임연이 말년에 머물며 선비들과 교유하고 시를 읊는 등 문학 활동을 펼쳤던 곳이다. 사진=이병삼

강 건너에서 태어나 강 이편에 잠든 최부

느러지 길에서는 또 한 명의 조선 선비를 만난다. 『표해록(漂海錄)』을 남긴 금남(錦南) 최부(崔溥, 1454~1504)다.

최부는 강 건너 나주 동강면 인동리에서 태어났다. 제주에 추쇄경차관으로 부임했다가 1488년 부친상을 당해 귀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중국으로 표류했다.

최부 일행은 중국에 표착한 뒤 영파·항주·소주·양주·북경과 요동 등을 거쳐 148일 만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는 성종의 명으로 이 여정을 『표해록』에 남겼다. 15세기 명나라의 지리와 풍속, 교통과 사회상을 상세히 기록한 귀중한 견문록이다.

최부는 무오사화로 유배된 뒤 1504년 갑자사화 때 목숨을 잃었고, 중종 때 신원됐다. 원래 해남에 있던 묘소는 1947년 후손들에 의해 몽탄면 이산리로 옮겨졌다.

강 건너 동강에서 태어난 최부가 지금은 강 이편 몽탄의 부모 묘소 아래 잠들어 있는 셈이다. 전망대 쪽에는 그의 삶과 『표해록』을 기리는 ‘곡강, 최부 길’도 조성돼 있다.

금남 최부의 묘. 부모의 묘소 아래 잠들어 있다. 사진=이병삼

느러지로 가는 길이 곧 여행이다

마침내 느러지에 닿는다. 느러지는 영산강이 오랜 세월 굽이치며 만들어 낸 공간이다. 안쪽에는 마을과 논밭이 자리하고 강변에는 개장을 앞둔 파크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막상 이곳에 서면 목적지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난 풍경들이 먼저 떠오른다.

동강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한반도 지형, 옹기를 싣고 돛배가 떠났던 석정포, 산자락에 남은 옛 호남선 터널,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몽탄노적과 『타오르는 강』, 식영정의 임연과 『표해록』의 최부까지.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영산강이다.

강은 산을 만나면 돌아갔고 들판을 만나면 몸을 넓혔다. 사람들은 강가에 포구를 만들고 배를 띄웠으며 철길을 놓고 정자를 세웠다. 선비는 시를 읊었고 소설가는 강을 문장에 담았다. 그렇게 자연과 사람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오늘의 느러지 길이 됐다.

느러지는 한 곳을 보고 돌아오는 여행지가 아니다. 강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며 풍경과 역사,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씩 발견하는 여행이다.

그래서 이 길은 승용차보다 자전거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속도를 조금 늦추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포구도, 터널도, 꽃도, 오래된 정자도 비로소 말을 걸어온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 영산강은 여전히 느러지를 휘감아 천천히 흐른다. 바다를 향해 서두르지 않는 강처럼 우리도 이곳에서는 조금 천천히 가도 좋겠다.

느러지의 가을은 목적지에만 있지 않다. 느러지로 가는 그 길 전체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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