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취재=문윤진·최점주·박관섭 기자] 전남 무안은 예로부터 바다와 갯벌 들녘과 구릉이 어우러진 서정의 고장이다. 영산강 물길이 바다를 만나고, 서해의 바람이 들꽃과 갈대를 흔드는 이 땅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어 왔다. 문학은 결국 사람과 자연, 기억과 상상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무안은 소설가가 태어나고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토양인지도 모른다.
최근 무안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심경숙 소설가가 두 번째 소설집 『푸른 장미의 비밀』을 출간했다. 이 작품집은 2025년 푸른사상 소설선 71권으로 간행되었으며, 표제작 「푸른 장미의 비밀」을 비롯해 「미늘」, 「침대 클럽」, 「헬로」, 「로또맨」, 「카라빈카」, 「빙떡 이야기」 등 다양한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더욱 반가운 소식은 심경숙 작가가 최근 국내 소설가들을 대상으로 한 제18회 현진건문학상 최종심 후보 6인에 이름을 올리며 전국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최종 결과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지역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좋은 결실을 기대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문학은 때로 화려한 중심보다 조용한 주변에서 더욱 깊이 성장한다. 심경숙의 소설은 바로 그런 작품들이다. 큰 목소리로 세상을 설파하기보다 삶의 그늘과 상처, 인간 내면의 욕망과 환상을 조용하면서도 집요하게 응시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표제작 「푸른 장미의 비밀」은 제목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기 어려 푸른 장미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동경과 이상을 상징해 왔다. 작품 속 푸른 장미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집념이자,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며, 인간의 존재를 지탱하는 꿈의 다른 이름이다.
존재를 향한 물음, 인간은 왜 꿈을 꾸는가?
소설 속 아버지는 평생 푸른 장미를 찾아 헤맨다. 푸른 장미를 향한 그의 집착은 얼핏 기이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을 읽어갈수록 독자는 그 여정이 단순한 탐구가 아니라 존재를 향한 물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왜 꿈을 꾸는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왜 포기하지 못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사실주의적 문법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신화와 전설, 민담과 환상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여 독특한 서사 세계를 구축한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경계에서 독자는 어느 순간 사실과 상상의 구분을 잊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지닌 묘한 매력이다.
수록작 「미늘」 역시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기억 속에 깊이 박힌 상처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얼마나 날카롭게 남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목의 ‘미늘’은 낚싯바늘에 달린 역방향의 작은 갈고리를 뜻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쉽게 떨쳐 낼 수 없는 삶의 아픔과 후회를 상징한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그 흔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는 그 진실을 담담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로또맨」에서는 현대 사회의 욕망과 허상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인물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 뒤에는 불안한 현실과 결핍된 삶의 풍경이 숨어 있다. 독자는 결국 작품 속 인물을 비웃기보다 연민하게 된다.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빙떡 이야기」에서는 한층 친근한 지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빙떡이라는 향토 음식 속에 사람들의 일상과 기억, 공동체의 이야기를 녹여내면서 지역 문학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정 지역의 풍경과 정서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이다.
심경숙의 소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상상력의 힘
이처럼 작품집에 실린 여러 작품은 저마다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상상력의 힘을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을 쉽게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존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된다.
문학평론가들은 최근 한국 문학의 과제를 “지역성과 보편성의 조화”에서 찾곤 한다. 특정 지역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전국의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심경숙의 소설은 주목할 만하다. 작품 곳곳에는 남도의 정서와 지역의 풍경이 스며 있지만, 그 의미가 향토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면서 보다 넓은 세계와 소통한다.
특히 이번 소설집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점은 이야기꾼으로서 작가가 지닌 역량이다. 오늘날 문학은 때로 난해함이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소설은 독자를 끝까지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힘을 지녀야 한다. 심경숙의 작품은 이러한 본연의 서사적 재미를 잃지 않는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이야기의 힘을 믿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등단 이후 꾸준히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탐구해 왔으며, 첫 소설집 『나비의 문』에서도 독특한 서사 세계를 선보인 바 있다.
문학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빠르게 변화해도 인간은 여전히 이야기 속에서 위로를 얻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런 의미에서 『푸른 장미의 비밀』은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있는 소설집이다. 잃어버린 꿈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현실에 지친 마음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기 때문이다.
무안은 새로운 문화적 성장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고인돌과 영산강, 갯벌과 바다를 간직한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문학을 창조하는 작가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심경숙 작가 역시 무안의 생태지리적 환경에서 작품의 소재와 영감을 얻는다. 그는 무안에 대해 “사실 반만년의 긴 역사와 깊은 문화가 담긴 무안은 무한한 작품의 소재와 영감을 주는 곳”이라면서 기회만 되면 무안의 곳곳을 찾아서 누비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문학적 성취는 한 작가의 개인적인 성과를 넘어 지역 문화의 소중한 자산이라 할 만하다. 두 번째 작품집을 출간하고 현진건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오른 지금, 작가는 중요한 문학적 전환점에 서 있다. 수상 여부를 떠나 전국 문단이 그의 작품 세계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오랜 시간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작가에게 주어지는 값진 평가이기 때문이다.
무안의 풍경과 삶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 지역의 경계를 넘어 더 많은 독자와 만나고, 작가의 문학 세계가 한층 깊고 넓게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 심경숙 작가
△ 1955년 경남 진주 출생. 무안 거주.
△ 200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단속사 가는길’ 당선
△ 주요 작품 : ‘소금의 눈물’(2019, 현진건 문학상 추천작), ‘미늘’(2020, 여수 해양문학상), ‘빙떡 이야기’(2021, 서귀포 문학작품상), 장편소설 ‘본국검 황루’(2022, 무예소설문학상), 단편소설집 ‘나비의 문’(2016), ‘푸른 장미의 비밀’(2026) 간행.
△ 2020년 전남예술인협회 예술인공로상(전남도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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