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3리 우비마을 앞 영산강 상사바위. 사진=이병삼
두 젊은 남녀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를 기록한 상사바위 표지판. 사진=이병삼

[공동취재=정병수·이병삼·유종 기자]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주룡나루에서 가을 영산강 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약 800m를 걷다 보면 상사바위가 있다.

상사바위는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곳이면서, 한때 바다로 나가던 어부들이 무사귀환과 풍어를 빌던 곳이기도 하다. 무안군청 마을유래에 의하면 청호3리 우비마을은 영산강과 바로 맞닿아 있어 영산호 축조 이전에는 어업이 주민들의 주요 생업이었다.

옛날 우비마을에는 황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80여 호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이 마을 제일 부잣집 황씨의 외동딸이 어느 봄날 영산강 변에 굴을 따러 갔다가 바위에 미끄러져 강물에 빠지고 만다. 이 모습을 본 이웃 마을 추씨 총각이 황 낭자를 구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추씨 총각은 황 낭자와 장래를 기약하고 바다로 조업을 나갔으나 큰 태풍을 만나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황 낭자는 식음을 전폐한 채 매일 강변의 바위를 찾아 떠나간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번개가 치며 천둥이 울리더니 강물에서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나 황 낭자의 몸을 감고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이 소식을 듣고 뛰어나온 황 낭자의 부모가 강변에 이르자 두 마리의 큰 구렁이가 나타나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마을 사람들은 두 남녀의 혼신(魂神)임을 알고 혼례를 올려 주었고, 두 마리의 구렁이는 인사를 한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두 남녀의 사랑을 애틋하게 여겨 이 바위를 상사바위라 부르기 시작했다.

상사바위 전설은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전해지며 대체로 이루어지지 못한 남녀의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일로읍 우비마을 상사바위 전설은 황씨 처녀와 추씨 총각이 죽음으로 헤어졌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혼례를 올린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를 보인다. 무안군청 마을유래에서는 이를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사랑’​이라고 설명한다.

이 점에서 상사바위 전설은 단순한 애정 설화를 넘어,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잊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상사바위에는 근현대사의 흔적도 남아 있다. 한국전쟁 당시 주민들은 상사바위 위에 수숫대로 초소를 만들고 주변을 감시했다고 한다. 영산강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넘어오는 것을 감시하다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사이렌을 울려 주민들에게 알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사바위는 한 시대에는 사랑의 장소였고, 또 다른 시대에는 마을을 지키는 장소였다.

상사바위 쪽에서 바라본 주룡나루, 영산강 위를 지나는 목포보성선 철교, 강 오른쪽은 영암군 학산면이다. 사진=이병삼
상사바위 쪽으로 향하는 나무데크길 위를 자전거 여행자가 지나고 있다. 사진=이병삼

현재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상사바위 주변은 영산강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목포 영산강 하구부터 담양댐까지 이어지는 자전거길이 조성돼 많은 자전거 라이딩 여행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특히 영산강 하굿둑부터 주룡나루까지 12km에 이르는 둑방길이 주요 풍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취재 중에도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라이딩을 즐기고 있었다.

하굿둑부터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는 박주성(21세) 씨는 “영산강 변 자전거길을 틈날 때마다 찾는다”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명소이고, 강변을 달리다 보면 온갖 잡념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어 오늘 여행이 더 특별하다는 박씨는 청호쉼터 쪽으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배가 다니던 나루는 옛 기억이 되었고, 어업을 하던 사람들의 삶도 농업 중심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상사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기억이 되고, 여러 사람의 기억이 마을의 전설이 되어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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