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청사의 전망대에 있는 '남악신도시 조성 이전의 남악리' 모습을 옮겼다. 사진=문윤진

[공동취재=최점주·박관섭·문윤진 기자] 꽃은 피고 지면서도 흔적을 남긴다. 마을도 마찬가지다. 전라남도의 중심으로 성장한 남악신도시 한복판에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신흥마을’이라는 농촌 마을이 있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청사가 들어선 남악신도시는 2005년 전남도청이 들어서면서 행정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아파트와 관공서가 들어서며 마을의 이름과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한때 무안군 삼향읍 남악5리 신흥마을이었다.

현재 옛 마을 터에는 10여 채의 한옥이 남아 옛 모습을 일부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구역상 다른 큰 마을에 포함되면서 독립적인 마을의 기능은 사라졌다. 주민들의 기억 속에는 오룡산을 배경으로 남악저수지와 남산을 품고 살아가던 옛 신흥마을의 풍경이 여전히 남아있다.

남악리에서 나고 자란 오정현 이장은 “신흥마을은 남악리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전통 깊은 마을이었다.”라며 “도청이 생기면서 마을이 사라지고 이름마저 지워져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남악신도시 개발 이전 남악리 일대는 회룡(回龍)·신흥(新興)·남악(南岳)·오룡(五龍)·안동(安洞) 등 5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었다. 그 가운데 신흥마을은 응동(應洞)과 신흥이 합쳐져 형성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신흥’이라는 이름에는 ‘새롭게 흥하는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응동과 신흥으로 나뉘어 있던 마을이 합쳐지면서 신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1917년 자료에서도 ‘남악리 신흥마을’로 기록돼 있다.

새롭게 흥하는 마을이 품은 아쉬움남도의 중심으로 피었지만 사라진 마을

남악리 일대에는 고인돌과 패총 등이 분포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이주는 16세기 이후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전후로 진주강씨, 달성배씨, 안동권씨가 들어왔고, 이후 해주오씨, 김해김씨, 밀양박씨 등이 정착하면서 마을의 기반을 형성했다.

김해김씨의 입향은 임진왜란 당시 고하도 전투에서 전사한 김제(金濟)의 아들 김여서(金汝瑞)가 부친의 시신을 오룡산에 안장하고 응동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해주오씨는 오숙기(吳淑奇, 1548~1607)가 영광에서 이주해 안동에 정착했으며, 후손 오한수(吳漢秀, 1782~1865)가 신흥으로 분가했다. 이들은 간석지를 개간하고 대죽도·소죽도를 소유하면서 지역의 주요 성씨로 자리 잡았다.

신흥마을은 지리적으로도 독특한 입지를 갖고 있었다. 남악리는 오룡산을 중심으로 다섯 마리 용이 승천을 위해 다투는 형상으로, ‘오룡쟁주(五龍爭珠)’ 형국으로 설명된다. 신흥마을은 오작골에 안겨 남악저수지를 앞에 둔 소쿠리형 와우형(臥牛形) 마을로, 풍수적으로 안정과 풍요, 번영을 상징하는 길지로 여겨졌다.

서울대학교 최창조 교수는 남악의 지형을 “유·불·선(儒·佛·仙)의 땅 기운을 배분하여 조화하는 천하명당”이라 평가하며 도읍을 정할 만한 지형으로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 전라남도청이 이곳에 들어선 것은 이러한 풍수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전라남도 산하 22개 시군의 깃발이 펄럭이는 광주전남통합특별시 무안청사는 예전의 신흥마을이 있던 곳이다. 사진=최점주

남악리는 조선시대 나주군 삼향면에 속했다가 1895년 무안군에 편입됐다. 이후 목포부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의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로 이어졌다.

1980년대까지 신흥마을은 쌀과 보리를 중심으로 농사를 짓고 마늘·고추·고구마 등을 특작물로 재배하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오룡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농업용수로 활용됐고, 남악저수지 인근의 문전옥답은 남악리에서 손꼽히는 기름진 농토였다.

‘새롭게 흥하는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신흥마을은 한때 사람과 농토가 어우러져 삶이 이어지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2005년 전남도청 이전과 남악신도시 개발은 마을의 풍경을 바꾸었고, 신흥이라는 이름도 행정구역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했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룡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농사를 짓고 남악저수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주민들의 이야기는 오늘의 남악을 이루는 역사이기도 하다.

남악이 성장한 지금, 도시의 현재를 만든 옛 마을의 역사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흥마을은 더 이상 지도에서 독립된 마을의 이름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과 이야기는 남악의 역사 속에 남아있다. 사라진 마을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은 곧 오늘의 남악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되짚어보는 중요한 일이다. (계속)

남악신도시로 개발되기 이전인 2000년대의 신흥마을 전경으로 전형적인 농촌 촌락 마을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사진=목포대학교 박물관 자료집
과거 신흥마을의 땅이름과 공간구조로써 현재의 남악저수지 위로 자연마을인 응동과 신흥이 어우러진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진=목포대학교 박물관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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