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에 세워진 몽탄역 역사. 사진=작은철도박물관 전시

[공동취재=양기홍·이병삼·박정란 기자] 이름부터 마음을 붙잡는 역이 있다. 무안의 작은 간이역, 몽탄역이다.

몽탄(夢灘)은 ‘꿈속의 여울’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의 나주를 둘러싼 대결전을 앞두고, 꿈속에서 신령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넜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오늘의 몽탄역은 그 전설처럼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을 건넨다. 마을 한가운데서 주민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이 작은 역에서, 조용한 감성 힐링 여행이 시작된다.

110년의 시간을 품은 붉은 벽돌

△동화 속의 아담한 집같은 몽탄역사 지붕. 사진=이병삼

1913년 문을 연 몽탄역은 한국전쟁과 산업화의 격변기를 묵묵히 견뎌내며 마을과 함께 시간을 건너왔다. 붉은 벽돌과 삼각형 지붕의 역사(驛舍)는 동화 속 작은 집을 떠올리게 하며, 여행자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멈추게 한다.

2001년 호남선 복선화로 많은 역이 외곽으로 이전했지만, 몽탄역은 여전히 마을 한가운데 남아 있다. 하루 12차례 기차가 서는 무인 간이역으로, 승차권은 열차 안이나 모바일 앱으로 구매해야 한다. 이 작은 불편함마저도 여행의 속도를 늦추는 여유로 다가온다.

2014년 ‘문화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단장한 몽탄역은 교통 공간을 넘어 이야기가 머무는 문화 공간으로 변모했다. 한때 ‘호남선 철도축제’가 열리며 웃음과 발걸음이 이어지던 기억도 이곳에 남아 있다.

기억이 머무는 자리

△기다림마저 여행이 되는 공간, 몽탄역 맞이방. 사진=양기홍

역 안으로 들어서면 시대를 아우르는 철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흑백 사진 속 몽탄역은 과거의 풍경을 고스란히 불러낸다.

화부들이 석탄을 막걸리와 바꿔 마시던 이야기, 수화물로 실린 보해소주를 몰래 나누던 사연, 옹기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절까지. 몽탄역은 삶의 온기가 켜켜이 쌓인 기억의 저장소다.

맞이방 안쪽 ‘꿈여울 이야기방’에는 작은 철도박물관이 마련돼 있다. 역무원들이 사용하던 물품과 간이역의 옛 사진들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세월의 흐름이 전해지는 철도 승차권의 변천사. 사진=박정란

엄지손가락만 한 옛 승차권부터 오늘날의 모바일 탑승권까지, 승차권의 변천사는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전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자연스레 추억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인 박라연은 몽탄역을 단순한 역이 아닌, 꿈과 기억이 머무는 자리로 노래했다.

“몽탄역!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 달 불의 연기처럼 스며드는 / 지는 해도 문득 외박하고 싶어지는 / 첫사랑, 몽탄행 열차에게 / 같은 꿈길뿐이라는 것”

영산강이 빚어낸 느러지

몽탄역에서 아담한 고가도로를 지나면 영산강이 크게 휘돌아 흐르는 ‘느러지’에 닿는다. 강물마저 숨을 고르는 듯한 쉼의 자리다.

강폭이 넓어지고 물길이 느릿해지는 이곳에서 영산강은 S자로 몸을 틀며 한반도 지형을 만들어냈다. 인공이 아닌 자연이 빚어낸 지형이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강물도 숨을 고르는 곳, 한반도 지형이 또렷한 몽탄의 ‘느러지’ 전경. 사진=무안군청

느러지 마을에는 『표해록』을 남긴 금남 최부(1454~1504)의 묘소가 있다. 표류와 귀환의 기록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참형을 당한 인물이다. 처형 전날 태연히 친구와 술잔을 기울였다는 기록은 사림의 기개를 전한다.

식영정과 소망의 숲

△영리를 멈추고 마음을 쉬게 하는 정자, 식영정. 사진=양기홍

느러지를 지나면 고목들 사이로 식영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 중기의 문신 한호 임연(1589~1648)이 “기운이 머물고 물맛이 좋으며 선비가 살 만한 곳”이라 기록한 자리다. 조선 후기에는 학자들이 이곳에 모여 시를 나누고 학문을 토론하던 공간이 되었다.

담양의 식영정이 ‘그림자가 쉬어가는 곳’이라면, 무안의 식영정은 ‘영리 추구를 멈추고 마음을 쉬게 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자 곁에는 ‘소망의 숲’ 수변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10월이면 코스모스 축제가 열려 가을 햇살 아래 분홍빛 꽃물결이 잔잔히 출렁인다. 꽃을 따라 모여든 사람들로 데크길이 가득 채워진다.

옹기의 고장, 몽강리

△석정포 공원 조형물; 옹기마을의 풍요와 새롭게 시작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긴 조형물임. 사진=이병삼

몽탄역에서 일로읍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몽강리는 조선 후기부터 1970년대까지 옹기와 질그릇을 생산하던 주요 도요지였다. 한때 90여 가구가 옹기 제작에 참여하며, 가마와 공방이 마을을 메웠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옹기는 석정포를 통해 전국으로 실려 나갔다. 석정포는 영산포를 오르내리던 배들이 들르던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무안은 고려 말부터 분청사기를 굽던 고장이기도 하다. 꾸밈을 덜어낸 자유로운 선과 귀얄·반덤벙 기법이 무안 분청사기의 특징이다. 전국 분청사기의 태동과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도예가들이 그 맥을 잇고 있다. ‘분청사기명장전시관’에서는 무안 분청의 멋과 역사를 한눈에 만날 수 있다.

△‘분청사기명장전시관’, 꾸밈을 덜어낸 무안 분청의 멋을 느끼는 공간. 사진=박정란
△꾸밈을 덜어낸 자유로운 선과 귀얄·반덤벙 기법이 무안 분청사기의 특징이다. 사진=무안군청

과거로 걷는 또 하나의 길

몽탄 청용리에 조성된 ‘무안전통생활문화테마파크’는 폐교된 몽탄남초등학교를 활용한 공간이다. 1960~80년대 교실과 마을, 장터 풍경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달고나 좌판 앞에 서면 누구나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무안전통생활문화테마파크. 사진=이병삼
△60년대 상가 거리의 모습. 사진=이병삼

몽탄역은 크지 않다.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 작은 간이역에는 꿈과 기억, 사람과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가끔 멈추는 플랫폼에서 무궁화호의 뒷자리에 마음을 실어보자. 몽탄역에서의 여행은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깊게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