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일로역 전경. 1938년 준공된 일로역사(驛舍)는 2001년 호남선 복선화 사업으로 철거됐다. 사진=작은철도박물관

[공동취재=양기홍·이병삼·박정란 기자] 호남선 열차에서 내려 플랫폼에 서면, 갯내음 섞인 바람이 먼저 말을 건넨다. 무안의 일로역이다.

일로(一老)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무안 초대 현감 나사강이 “길이 너무 좁아 노인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좁고 소박한 길 하나가 마을의 이름이 되었고, 그 정서는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1913년 ‘삼향역’으로 문을 연 이 역은 1924년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2001년 복선화 사업으로 위치를 삼향읍으로 옮겼지만 ‘일로’라는 이름만은 그대로 남았다. 역사(驛舍)는 현대식으로 바뀌었어도, 그 이름에 담긴 온기는 1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옛 일로역 터와 백련문화센터

일로역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 달리면 옛 일로역 터에 닿는다. 한때 기차의 굉음이 울리던 자리에는 이제 끊어진 철로와 도시 숲이 펼쳐져 있다. 폐선부지는 지역 어르신들의 산책길이 되었고, 과거의 ‘철길’은 오늘의 ‘쉼길’인 ‘철길공원쉼터’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의 추억은 연극 ‘일로역 유물소동’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기차는 멈춰도 이야기는 흐른다”는 메시지는 철길공원쉼터 곁 ‘백련문화센터’로 이어진다. 요가와 도예, 전시와 공연이 이어지며 끊겼던 공간은 다시 사람들의 숨결로 채워진다. 단절의 시간은 연결의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옛 철길을 정비해 조성한 ‘철길공원쉼터’.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사진=박정란
백련문화센터. 요가·도예·전시·공연 등을 통해 세대가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진=박정란
백련문화센터 드럼동아리 발표회. ‘일로행 완행열차, 신나게 달려갑니다’를 주제로 열띤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박정란

500년 세월의 사람 냄새, 일로전통시장

도시 숲을 지나면 투박하지만 진한 사람 냄새가 번진다. 1470년, 흉년을 이겨내기 위해 시작된 조선 최초의 지방 장시 ‘일로5일장’이다. 영산강 물길을 따라 나주와 목포를 오가던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우시장이 성황을 이루던 그 활기는 지금도 이어진다.

갯벌에서 갓 건져 올린 낙지와 장어가 좌판에 오르고, 흥정하는 소리는 파도처럼 오르내린다. 그래서일까, 시골 정서가 그리운 사람들의 발길은 장날이면 자연스레 이곳으로 향한다. 시장 귀퉁이 소박한 백반집에서 뜨끈한 국물 한 숟갈을 들이켜면, 강인한 무안의 세월이 천천히 몸 안으로 스며든다.

일로전통시장. 1470년 흉년을 극복하기 위해 열린 ‘일로5일장’에서 비롯된 유서 깊은 장터다. 사진=박정란
일로전통시장 모습. 인근 목포와 남악 주민들까지 모여들어 장날이면 정겨운 인파로 가득 찬다. 사진=박정란

순백의 고요가 건네는 위로, 회산백련지

장터의 북적임을 뒤로하고 달리면 거대한 초록 융단 위로 하얀 연꽃 물결이 펼쳐진다.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 회산백련지다. 1955년 덕애 마을의 한 주민이 심은 열두 뿌리 백련은 70년 세월을 지나 거대한 연지로 자라났다.

흙탕물 속에서도 끝내 맑음을 피워내는 백련은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된다. 목재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연잎 위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떨어지고, 그 맑은 소리에 마음속 먼지도 함께 씻겨 내려간다.

여름이면 ‘무안 연꽃축제’가 열려 장관을 이루고, 유리온실과 탐방로, 물놀이장, 오토캠핑장이 쉼과 체험을 더한다. 그러나 이곳의 진짜 가치는 화려한 축제보다도 고요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의 침묵에 있다.

흙탕물 속에서도 맑은 꽃을 피워내는 백련. 예로부터 ‘꽃 중의 군자’로 불린다. 사진=이병삼
△회산백련지 유리온실. 카페와 난대식물이 있는 쉼의 공간이다. 사진=무안군청
회산백련지에는 순백의 연꽃 향기를 맡으며 가족과 함께 하룻밤 쉬어갈 수 있는 오토캠핑장이 마련돼 있다. 사진=양기홍

용이 머물던 물길, 주룡나루

뱃길이 끊긴 주룡나루터는 적벽정·용호정과 석룡 조각상이 들어서며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사진=이병삼
주룡나루에서 바라본 영산강과 남해선 철교. 2025년 개통된 임성리역-신보성역 구간으로, 강을 가로지르는 장쾌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사진=이병삼

읍소재지에서 전남체육중·고 뒷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영산강과 마주한다. 유유히 흐르던 강물이 적벽과 상사바위 앞에서 먼저 바다로 나가려 어깨를 부딪치던 곳, ‘무안제일경’이라 불리던 주룡나루가 있다. ‘용이 머문다’는 이름처럼 굽이치는 강물은 장엄하고도 깊게 자맥질한다. ‘두령량’이라고도 불린다.

주룡나루는 나주와 목포, 건너편 영암을 잇던 뱃길의 요충지였다.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막히면서 뱃길은 끊기고, 세차게 흐르던 강줄기는 호수 같은 담수호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옛 나루터는 공원화되어 두 개의 정자와 석룡 조각상이 한가롭게 서 있고, 레저 수상시설까지 더해져 또 다른 활기를 품고 있다.

인근 우비마을의 ‘못난이 미술관’은 소박한 해학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해학적인 조각상 앞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뜻밖의 위로가 된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그 미학은 주룡나루의 묵직한 풍경과 닮았다.

못난이 미술관에는 저마다 개성을 지닌 다양한 못난이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양기홍

비워진 자리에서 피어난 해학, 품바의 발상지

옛 천사촌 입구에 자리한 ‘품바 발상지’ 표지석. 품바의 뿌리를 알리는 상징물이다. 사진=이병삼
김시라 작가의 생가터. 현재 생가는 사라지고 장승과 솟대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이병삼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일로는 한국 1인 연극의 전설 ‘품바’가 태어난 곳이다. 작가 김시라는 일로읍 의산리 소지마을에 살던 ‘천사촌’ 걸인들의 삶을 목격하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훔치지 않고 나누며 살던 걸인 대장 천장근의 삶은 ‘품바’의 모티브가 되었고, 민초의 한은 각설이 가락에 실려 웃음으로 되살아났다.

1981년 일로공회당에서 초연된 이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그 무대의 흔적은 이제 빈터로 남아 아쉬움을 더한다. 천사촌과 김시라 생가, 일로공회당은 사라지고 ‘품바발상지’ 표지석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타인을 향한 자애와 해학의 정신만은 여전히 이 마을의 공기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일로는 화려하지 않다. 대신 시간의 결이 깊다. 역은 옮겨졌고, 나루는 멈추었으며, 공회당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비워진 자리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움튼다.

기차에서 내려 들판을 걷고, 장터를 지나 연꽃 사이를 거닐다가, 마지막으로 주룡나루로 가면서 품바타령을 떠올려 보라. 일로 사람들의 당찬 모습이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일로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은 울림으로 당신의 마음에 다가설 것이다. 기차는 멈춰도 이야기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